[경제&] 지역 스타트업 대표들 명함 두 개 쓰는 까닭
대리도 됐다가 대표도 됐다가… 투자협상 따라 '직급 변신'
부산 스타트업 대표들은 두 개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는 대표 직함이고, 하나는 대리 직함이다.
보통 영업사원들이 소위 '급'을 맞추기 위해 시작부터 '대리'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들이 대리로 진급할 때 '과장'이나 '팀장'을 단다. 주변에서 "우와 벌써 과장이야"라고 했을 때 "그냥 이름만 과장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20·30대라 하면 얕잡아 봐
투자계약 때 후려치기 많아
협상서 불리해 '대리 직함' 써
직급 올리는 일반기업과 대조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되레 반대다. 분명 대표인데 대리 명함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들이 '급'을 낮추는 이유는 본인은 무시당하더라도, 회사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타트업 한 대표는 "투자자들을 만났을 때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대표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를 얕잡아보고 투자 계약 때 조건을 후려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가 경험과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서는 협상에서 불리해 대리 명함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대리 직함은 '선택까지의 시간 벌기'용으로도 사용된다. 투자자나 협업 대상을 만났을 때 대표 직함을 내걸고 만났을 경우에는 우유부단함은 때로는 약점이 된다. 하지만 매번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다. 특히 부산 스타트업일 경우 서울 지역 투자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대리 명함으로 상대와 인사한 뒤 "대표님과 상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가 가능해진다.
20대 대표에 부산이 본사일 경우 이러한 후려침(?)의 강도는 더 높아진다고 한다. "요즘 서울에서는 이렇게 안 해"라는 말로 압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본사가 부산이지만 서울에 사무실이 있는 경우 서울 주소를 명함 위쪽에 올려놓는 일도 생긴다. 일부러 본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 대리가 대표라는 거짓말이 들통나면 어떻게 될까? "스타트업은 원래 대표가 경영지원팀장이고, 총무팀원이고, 법무팀 아닙니까"라고 너스레를 떨면 된단다. 사실 상대방도 이러한 처지를 알아서 그러려니 한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스타트업들이 많은 정보가 없기에 발생하는 일"이라며 "스타트업 대표들은 투자자들과의 정보 비대칭 상황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이러한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많은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