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시의 꿈
/황정혜 부산시청 국제통상과 사무관
지금은 낚시와 트레킹 관광의 대명사처럼 돼있는 일본 쓰시마는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척박한 땅이라고 외면했던 섬이다. 그러나 실은 농사에 적합지 않을 뿐, 임업과 수산업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가진 땅이다.
이처럼 척박한 생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조선과의 화평 즉 '조선통신사'였다. 그런데 이 조선통신사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는데 12차례 오고간 '평화의 사절단' 조선통신사는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가 초청하는 형태였다. 아직 임진왜란 등의 전쟁의 후유증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청은 가능하지 않았고, 방문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쓰시마 사람들은 거짓 옥쇄를 찍어 초청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것이 3차례나 이어지던 중 결국 에도 막부에 발각됐다.
'다 죽었구나' 했을 때 에도 막부는 이미 평화에 대한 염원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평화만이 서로를 살리는 방법이란 것을 인정해 눈을 감아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200년간 평화의 시대를 구가하는 서막이 올랐다. 조선통신사의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쓰시마 기념행사에서 그들은 이 옛날 일을 소재로 무대를 꾸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 때 쓰시마 사람들의 꿈은 '우리 섬은 우리 방식으로 지킨다'였다.
흔히 인구나 면적으로 도시를 평가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 시모노세키는 인구 27만 명밖에 안되는 중소 도시다. 그러나 시모노세키는 일본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도시다. 1958년 일본 열도 혼슈와 큐슈 바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만들어지고 1973년 칸몬대교가 세워진다.
그런데 이 칸몬해협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해 오늘날까지도 가끔 사고가 발생할 정도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10세기 무렵 천황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갖은 권력 횡포를 부린 헤이씨 집안이 같은 무사 출신의 겐씨와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패하면서 일본의 헤이안 시대는 끝난다. 가마쿠라 막부라는 즉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막부가 실권을 쥐는 막부의 나라로 체제가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이 간몬해협에서의 싸움으로 막부 체제로 넘어갔던 이 곳이 다시 근년에 들어서면 메이지 유신을 통해 다시 천황파가 실권을 잡는다. 오늘날의 일본의 일왕 체제를 만드는 그 역사의 주요무대가 되었으니 어찌 외형적 수치만으로 도시를 재단할 수 있으랴.
2018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돼 우리와 활발한 문화교류를 하고 있는 가나자와는 일찍이 창조문화도시의 선두 주자 도시로 국제사회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은 이 바탕을 만든 뒷얘기가 있으니, 에도 시대 당시 백만석을 자랑하는 영토를 가진 영주가 일본의 천하를 가르는 대전에서 반대편 장군에 줄을 섰다가 패하면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살기로 '우리는 더 이상 힘을 비축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맹세의 정표로 문화사업에 힘을 쏟은 것이 바로 오늘날의 세계적으로 이름난 '창조문화도시 가나자와'의 모태가 된 것이다.
정일근의 시처럼 부산 사람은 주머니속에 언제라도 바다를 넣고 있다가 꺼내어 본다. 다들 기억 속에 바다를 품고 산다. 도심 속 북항은 재개발 사업을 통해 새로운 모습의 바다를 보여줄 채비를 하고 있고, 세계 속의 신항은 분단국에서 남북이 연결될 새로운 지도를 그릴 용트림을 하고 있다.
산과 바다와 강과 함께 살아가는 대도시 부산의 새로운 꿈은 무엇인가. 내가 꾸는 꿈, 네가 꾸는 꿈, 각자의 꿈들이 모이고 분해되고 융합해 그렇게 상승 작용을 하면서 부산이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