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① 짝퉁주의보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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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원이 아닌 것은 까스명수가 아닙니다”

부산일보 1986년 4월 25일 자 2면 광고. 부산일보 1986년 4월 25일 자 2면 광고.

“길거리에서 파는 유명 상표의 스포츠화 모두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도발적 문구가 1986년 4월 25일 자 부산일보에 실렸다. ‘프로스펙스(국제상사)’를 비롯한 신발제조업체 12곳 공동명의의 광고였다. 10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메이커 운동화’를 흉내 낸 ‘프로스포츠’ ‘나이스’ ‘아디도스’ 따위의 짝퉁을 막기엔 버거웠다.

짝퉁은 시대와 품목을 가리지 않았다. ‘에프킬라’를 본뜬 ‘비비킬라’가 부산서 기승을 부린다며 경고하는 광고(1965년)부터 ‘오렌트’ ‘오리엔탈’ 따위의 유사품에 골머리를 앓던 ‘오리엔트 시계’ 광고(1971년), ‘25세 청년의 고민’이란 점잖은 말투로 1년도 안 된 짝퉁 ‘로보트보일러’를 타이르는 25년 차 ‘로켓트보일러’ 광고(1990년)에 이르기까지 짝퉁주의보는 넘쳐났다.

최다 짝퉁주의보는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된 항생제 ‘마이신’에 발령됐다. 미국 화이자 특허약인 ‘테라마이신’ 수입제조사 중앙제약은 1962년 “테라마이신 정의 진부(眞否)를 가린다”는 광고를 시작으로 1966년까지 10차례나 경고성 광고를 실었다. 알약 형태로는 수입하거나 만들지도 않는데, 시중에 테라마이신 정이 범람하니 귀신도 곡할 노릇이었다. 금박 포장에 화이자 상품명이 인쇄된 테라마이신 캡슐을 반드시 확인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외제 선호 사상이 부른 짝퉁은 꽤 많았다. 프랑스제 ‘코티분(粉)’을 들여온 태평양화학은 1962년 “300~500환에 빈 갑을 사가는 사람을 경계하라”며 “빈 갑은 반드시 찢어서 없애 달라”고 당부했다. 빈 갑에 밀가루 따위를 섞어 짝퉁 화장품을 만드는 업자 탓이다. 2년 뒤엔 아예 이중 밀폐된 캔으로 용기를 바꿔 “깡 속에 들지 않은 건 가짜 불란스 코티분”이라고 못 박았다. 아이들 비상약이던 기응환도 가짜 일제에 시달렸다. ‘통표가 없는 가짜 일제 기응환을 조심하세요’라는 1971년 광고는 “외래품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에 가짜 일제 기응환에 속지 말라”며, 1포당 10원씩 사들여와 140원에 판 악덕업자의 실상을 고발했다.

짝퉁과의 전투 방식은 다 달랐다. “30원이 아닌 것은 까스명수가 아닙니다”(1967년)거나 “화이자 테라마이신은 80원”(1966년)이라며 정품의 가격에 초점을 둔 것도 있다. 당시로선 첨단의 위조방지책까지 동원됐다. 대선소주는 1957년 ‘다이아 소주’를 모방한 밀주 제조업체에 맞서 마개에 이중봉함장치를 했고, 미원은 1963년 ‘미원’ 글자가 박힌 특수청색선의 위조방지포장을 내놨다고 광고했다. 수학 참고서의 바이블로 불린 ‘수학Ⅰ의 정석’은 “66쪽 아래에서 열째 줄의 글자로 가짜 책을 가려낼 수 있다”(1987년)고 광고하기도 했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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