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2. 도리스 위스키
‘도라지 위스키’로 바뀐 씁쓸한 뒷맛
부산일보 1959년 8월 7일 자 3면에 5단 광고로 장문의 반박문이 실렸다. 한 언론에서 “왜색 상표 도용”이라며 ‘도리스 위스키’를 비판하자 “허위보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하려고 변호사까지 선임했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하는 광고였다. 광고주는 부산 서구 토성동 국제양조장. 1960년 1월 21일까지 계속된 10차례 반박 광고의 시작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배급품에 섞여 위스키가 들어온 뒤 일본산 위스키인 ‘도리스 위스키’의 밀수도 성행했다. 국제양조장이 이름마저 똑같은 모방 위스키를 내놓으면서 사달이 났다. 일본의 ‘도리스’는 산토리 창업주인 ‘토리이(鳥井)’의 성에서 따온 위스키. 국제양조장 측은 영국 보수당 ‘토리(Tory)’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강변했다. “양주는 명칭 그대로 서양에서 흘러왔기에 모방의 옷을 입었다고 무슨 잘못이냐”며 정색하는 광고도 실었다.
왜색 도용이란 누명(?)에 8월 15일에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드리는 말씀’으로 맞섰다. “왜놈의 술까지 다량으로 가져와 먹는 광경에 가슴이 쓰렸다”며 운을 뗀 뒤 “충성하는 마음으로 왜놈의 위스키를 물리쳤는데, 모략을 받았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비판 기사가 이어지자 “천벌을 받을 일”이란 격한 표현까지 써 가며 해당 언론사를 공격했다. 해당 언론사 주최로 열린 필리핀 대 한국의 친선 야구 대회에 언론사 측의 애원으로 100만 환이나 들여 위신을 세워 줬는데 정작 500환 입장권 한 장도, 대회 일자 통지조차 받지 못했다는 푸념이었다. 광고전은 1960년 2월 국제양조장 대표가 구속된 뒤 이름을 바꾸겠다는 사과문을 19일 자에 실으면서 일단락됐다.
뜸했던 국제양조장 광고는 1962년 신년 호에 ‘문화인의 양주, 국가 보배주’라는 제목과 함께 ‘도라지 위스키’로 돌아왔다. 맞다.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슬픈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가사 속의 바로 그 도라지 위스키다. 가객 최백호가 동래시장 인근 허름한 다방에서 착안했다는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그 위스키다. 도리스와 비슷한 한글 도라지로 이름만 바꾼 거다. 여름엔 해수욕장에 시음장을 열고, 서울 인천 동두천 의정부 춘천 등 전국으로 세를 확장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 갔다. 1967년 9월엔 창립 20주년 기념 전면광고까지 실었다.
광고로만 보면 최고의 위스키였다. 대법원장상, 부흥부장관상 등 7대 상을 받았고, 비타민 A·B·C·D가 함유돼 체력을 도와준다고 선전했다. 비타민 함유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보건당국이 메탄올 기준 초과로 인체에 해로운 불량술이라며 폐기 처분을 지시했다”는 1966년 기사는 확인된다. 도라지가 들어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위스키 원액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것 역시 분명하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