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⑤ 명절 선물과 상품권
1960~70년대 명절 대목 매출의 절대 강자
“지성인의 선물은 최고의 교양으로! 존경하는 분에게, 사랑하는 분에게, 다정한 벗에게, 뜻맞는 동지에게!”. 잡지 ‘사상계’가 “1년 치 구독료 650원, 반년 치 350원”이라며 “사상계 정기구독권을 선물하라”는 광고를 1964년 12월 17일 자 부산일보에 냈다. 잡지까지 ‘선물용’을 강조하고 나설 정도로 나눔의 정서를 공략한 광고는 ‘없던 시절’에도 흔했다.
명절 대목은 ‘선물용’ 판촉의 호기였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선물세트를 홍보하는 광고를 내고 명절 대목을 매출 신장의 기회로 삼는 게 일상이 됐다. 신문 광고로만 보면 셔츠 제조업체의 물량 공세가 거셌다. 우주표 신세기 셔츠, 조광 와이셔츠, 사자표 시대 셔츠는 1950년대 후반부터 명절마다 공격적으로 광고를 냈는데, 이들이 강조한 건 상품권이었다. 1965년 추석을 앞두고 시대복장은 사자표 셔츠를 광고하면서 “물어볼 것 없습니다, 선물은~”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품권을 권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통용된 상품권의 전성시대는 1960~70년대였다. 석유 파동을 겪고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1975년 12월 상품권 발행이 전면금지됐지만, 그 직전까지도 셔츠, 구두, 설탕, 조미료, 심지어 맥주에 이르기까지 품목을 가리지 않고 “편리한 상품권을 애용해달라”는 광고문구가 넘쳐났다. “부산의 상품권 매상고는 상점별로 전체 대목 매상의 20~50%에 달해 80%를 넘는 서울 대형 백화점 경기와 거리가 멀다. 결국 서울의 낭비 억제 목표 때문에 부산 중소상인이 피해를 보게 됐다”며 상품권 발행 전면 금지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1975년 당시 기사만 봐도 명절 대목 매출에서 상품권이 차지한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상품권의 범람만큼 소비자 불만도 컸다. “공짜 선물로 받았는데 왜 그리 쩨쩨하냐”며 상인들이 대놓고 상품권을 들고 온 소비자를 홀대했다느니, 가격이 올랐다며 웃돈을 얹어 받았다느니, 거스름돈을 안 주는 바람에 공연히 쓸데없는 물건을 더 사게 됐다느니 따위의 기사와 사설이 명절 대목 즈음엔 으레 실렸다.
상인들도 난감할 때가 있었다. 1974년 설을 앞두고 설탕 상품권을 2000장이나 판 부산의 설탕 소매상은 며칠 새 설탕값이 44.1%나 오르는 바람에 울상을 지었다고 한다. 15㎏ 포대당 1200원이나 밑지고 팔아야 하는데, 상품권 대신 포대당 400~500원씩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돌려주려고 해도 소비자가 현물교환만 원해 냉가슴을 앓았다고 한다.
1994년 상품권 발행은 다시 합법화됐지만, 상품권에 웃고 우는 사연은 끊이지 않았다. ‘편리함’과 ‘정(情)’ 사이에서, ‘선물’과 ‘뇌물’ 사이에서, 현금도 아니고 상품도 아닌 상품권이 만든 풍속도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