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⑥ 국어순화운동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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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동 주점 ‘딸라’가 ‘엽전’으로 이름을 바꾼 사연

국어순화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퍼모스트’를 ‘빙그레’로 바꿨다고 선전한 1976년 6월 22일 자 부산일보 8면 광고. 국어순화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퍼모스트’를 ‘빙그레’로 바꿨다고 선전한 1976년 6월 22일 자 부산일보 8면 광고.

한국 최초의 정통 아이스크림 ‘빙그레 투게더’는 처음 출시된 1974년엔 빙그레가 아닌 ‘퍼모스트’ 투게더였다. 1976년 6월 22일 자 부산일보 8면에는 “빙그레로 퍼모스트 상표를 바꾸었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빙그레 웃는 얼굴로 바뀌었지만, ‘f’자의 퍼모스트 상표 골격은 그대로였다. 미국 퍼모스트사와 기술제휴가 만료된 게 계기였지만, 이면엔 국어순화운동과 외국의 사치성 소비재 상표 사용을 금지한 정부 방침이 작동했다. 그 와중에 ‘다이알 비누’를 만들던 동산유지처럼 “특허국에 등록돼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개명에 노골적으로 반발한 기업도 있었다.

같은 날 부산일보 4면과 5면에 걸쳐 부산시요식업협동조합이 ‘국어순화 범국민 운동에 호응하여 우리말 옥호 바꾸기에 앞장선 업체들’이라는 광고를 냈다. “우리 주변에 범람했던 외래어, 속어, 비어 때문에 고유의 좋은 말이 때 묻고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주점 38곳의 ‘옥호’를 앞장서 바꿨음을 강조한 광고였다. 행간엔 정부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을’의 현실이 숨어 있었다.

주점 ‘프린스’가 ‘왕자’로 바꾼 것을 필두로, ‘파라마운트’가 ‘태산’으로, ‘그린하우스’가 ‘녹지대’로 간판을 바꿔 단 건 그나마 자연스럽다. 남포동 주점 ‘나포리’가 ‘남포리’로, ‘아마존’이 ‘낙동강’으로 바꾼 건 지역성을 강조한 절묘한 개명이었다. 압권은 흔적을 살려 ‘리모델링’한 작명이다. ‘실버타운’에서 ‘실버들’로, ‘아베크’에서 ‘둘이서’로, ‘딸라’에서 ‘엽전’으로, ‘바니’에서 ‘깡충’으로 간판이 바뀐 것이 그랬다.

‘바니’는 당시 강압적인 연예인 개명 논란을 부른 쌍둥이 가수 ‘바니걸스’를 떠올리게 한다. 방송국마다 ‘토끼소녀’ ‘토끼소녀들’ ‘토끼아가씨들’로 달리 직역해 부를 만큼 혼선도 컸다. 개명을 거부했던 가수 ‘패티 김’도 결국 ‘김혜자’로 바꿨고, 가톨릭 세례명이 세레나였던 가수 ‘김 세레나’는 ‘김희숙’이란 본명을 쓰라는 압력에 ‘김세나’라는 줄임으로 타협했다. 남성 듀오 ‘어니언스’가 ‘양파들’로 바뀐 것도 그즈음이었다.

부산시요식업협동조합의 광고가 실린 바로 그날, 방송윤리위원회가 스포츠 외래어 557개를 국어화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야구의 ‘스틸’은 ‘자리 뺐기’, 권투의 ‘잽’은 ‘톡톡치기’ 식으로 우리말 사용을 권장했다. 그 뒤 축구 중계에선 ‘구석차기(코너킥)’ ‘진입반칙(오프사이드)’ 따위의 ‘낯선 우리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국어순화가 ‘운동’의 차원으로 전개된 건 이를 독려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모든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시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부른 파장이었다. 취지야 백번 공감하지만, 일방통행식 계몽의 한계 역시 뚜렷했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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