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⑦. 삐삐
청춘 남녀의 삐삐는 사랑을 싣고
“삐삐 덕에 마음 편한 영이네, 삐삐 없이 초조한 철이네”. 자정이 돼도 귀가하지 않은 자녀를 둔 두 가족의 사연을 삽화로 풀어낸 한국이동통신의 1992년 부산일보 광고다. 삐삐가 있는 영이네는 독서실서 공부하는 딸의 안부에 안심하는 반면 삐삐가 없는 철이네는 좌불안석임을 절묘하게 대비했다.
1983년 처음 보급된 무선호출기 ‘삐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혁명적인 통신수단이었다. 삐삐가 없을 땐 다방에 쪽지를 붙여 연락하거나 약속 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삐삐의 등장은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다만 수신만 가능하고, 그것도 숫자로만 표시되는 일방향 통신이란 태생적 한계는 있었다. 지역사업자인 015 부일이동통신이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삐삐까지 서비스할 정도로 진화하긴 했지만 말이다.
1992년 필립스가 99개의 한글 메시지를 내장한 삐삐 광고를 신문에 낸 것도 숫자로만 표시되는 통신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지금 보면 대수롭지 않지만 ‘01(긴급 연락 바람)’ ‘02(회사 연락 바람)’ ‘03(계획 약속 변경)’ 등 숫자 99에 대응하는 한글 메시지를 크게 광고했다. 숫자의 한계는 되레 아는 사람끼리 통하는 고유한 은어 문화를 만들며 시대를 풍미했다. 연애 사업에도 막대한 기여를 했다. ‘0024(영원히 사랑해)’ ‘1010235(열렬히 사모해)’ ‘486(사랑해)’ ‘4860(우리 사랑 영원히)’ ‘3505(사무치게 그리워)’ 따위의 숫자가 찍히면 온종일 설렜다. 삐삐 약어를 모아 해석하는 책까지 나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수신만 가능한 삐삐의 단점을 보완하는 사업도 봇물이 터졌다. 삐삐를 호출한 뒤 전용 전화로 호출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해피콜 광고(1996년), 택시 안에서 삐삐 호출을 받았을 때 요긴한 택시공중전화 광고(1997년)도 그래서 먹힐 수 있었다. 수신 전용 삐삐와 짝을 이룬 발신 전용 시티폰의 출시도 그런 맥락이다. 다만 휴대폰보다 싸다는 것만 빼곤 걸핏하면 통화가 끊기는 약점은 치명적이었다. 1997년 4월 “움직이는 공중전화 부일시티폰이 5월 1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야심 찬 광고는 불과 보름 뒤 1997년 5월 “휴대폰을 시티폰보다 싸게 구입하세요”라는 광고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1986년 3만여 명에 불과했던 삐삐 가입자는 1997년 1510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삐삐는 느림과 기다림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호출되지만, 당시만 해도 빠름의 상징이었다. 다급한 삐삐 소리에 숟가락을 놓고 허리춤을 들춰봤을 때 가장 빈번히 찍힌 숫자가 ‘8282(빨리 연락 바람)’였다. 시간은 상대적인 모양이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