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끊자] 6. 성소수자도 우리의 이웃
‘불결·정신적 문제 있다’ 오해일 뿐… 왼손잡이처럼 자연스러운 일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로 살다 보면 타고난 성격과는 별개로 방어적이고 위축된 내면을 가지기 쉽다. 근거 없는 혐오의 말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귀를 막아도 이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성소수자를 괴롭힌다. 동성애자인 A(23)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존경하는 교사가 “동성애는 불건전하고 지저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성(性) 정체성 고민이 시작될 즈음 이 교사가 무심코 뱉은 말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다. 고교 시절엔 자신의 성 지향성이 알려지면서, 다니던 교회에 반강제적으로 발을 끊어야 했다. 현재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A 씨는 “혐오의 말들이 넘쳐나고, 하나하나 상처가 된다. 내 자신에 당당해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혐오 탓 감정적 공격 다수
성소수자 85% ‘비난 두렵다’ 응답
서구 선진국, 비이성적 오해 없이 포용
우리도 다름 인정하는 문화 성숙해야
편협함의 가장 큰 피해자, 성소수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며 잔인하다. 사적 영역에 대한 혐오이다 보니, 공격의 말들은 매우 감정적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소수자들 대상 조사에서, 혐오나 비난이 두려우냐는 질문에 성소수자는 85%가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답했다. 장애인은 70%, 이주민은 52%였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93%로 가장 컸다.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 경험 여부도 성소수자는 각각 98%, 92%로 가장 높았다. 대부분 항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도가 가장 잔인하고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에는 일상적으로 게이나 레즈비언 등을 조롱하는 말들이 넘쳐나며, 아직도 TV의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성소수자들을 조롱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성소수자는 안전하지 못하다. 사례를 보면 한 트랜스젠더는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고 화장실 사용 문제로 항상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는 듯 쳐다본다. 출근하면 아침 인사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길을 가다 물리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퀴어 축제에 참여한 한 성소수자는 누군가 자신을 향해 인분을 던지며 “너네와 뭐가 다르냐”는 말도 들어야 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다름을 인정 못 하는 문화의 소산이다. 이주민이나 여성 혐오는 일자리 문제 등이 얽혀 있지만, 성소수자 혐오는 이념이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 결국 성소수자 혐오는 성소수자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이는 성소수자가 불결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선입견이 발현된 결과다. 물론 근거 없는 오해들이다.
애플의 CEO 팀 쿡,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인 저명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슨, 아이슬란드 첫 여성 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이들은 모두 성공하거나 존경받는 동성연애자이다. 이런 사례만 봐도 성소수자가 정신적 하자가 있거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대체로 서구 선진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크다. 교육수준이 높아 이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오해나 선입견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 덕에 선진 사회일수록 동성애는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왼손잡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다만, 왼손잡이는 오른손도 쓸 수 있지만, 타고난 성정체성은 강제로 바꿀 수 없다는 게 큰 차이다. 2001년 미국의 로버트 스피처 박사가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는 전환 치료가 가능하다는 연구를 발표했다가, 2012년 논문을 철회하고 “사실을 오도했다”며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남과 다른 성 정체성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질환이 아닌 것이다. 동성애가 에이즈(AIDS)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에이즈는 안전하지 못한 성생활이 원인으로 밝혀진 지 오래다.
지금의 영국은 비교적 성소수자에 대해 포용적인 나라로 인정되지만, 1950년대 컴퓨터 알고리즘의 선구자이자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을 화학적 거세로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기도 있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영국 등 다른 선진국 사례처럼 우리 사회도 성숙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퀴어축제 같은 성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사가 늘고, 성소수자의 차별 문제와 혐오 문화에 대한 공론의 장이 마련될수록, 그날이 빨리 찾아올 것으로 본다.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제2회 부산퀴어문화 축제’ 중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의 발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단체는 이날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혐오와 차별은 멈춰야 한다”며 “주변의 수많은 혐오와 차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의지하고 함께 걸어가겠다”고 외쳤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