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⑧ 가족계획
“한국 인구 100년 후 5억 명”이란 인구폭발론의 공포
“세계가 직면한 두 가지 난제는 인구폭발과 핵폭발”. 1965년 2월 10일 자 부산일보에 실린 독일 쉐링사의 먹는 피임약 ‘아나보라’ 광고다. 1964년 10월 고비사막에서 중국이 첫 핵실험에 성공해 세계 다섯 번째 핵무장 국가가 되면서 핵확산 공포가 커지던 때였다. 인구폭발과 관련해선 “한국 인구는 100년 후엔 5억 명이 된다”는 수치가 동원됐다.
여성의 삶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피임약 아나보라가 1963년 7월 한국에 처음 상륙할 때 내세운 광고 전략은 ‘가족계획’이었다. 그해 7월 25일 자 부산일보에 ‘가족계획과 미용’이란 제목으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불행한 다남다녀, 모체에 해로운 다산 따위의 이유를 들며 “(먹는 약이라서) 부부만의 침실이 없는 한국 가정에 가장 알맞은 피임약”임을 강조했다.
1967년 2월에는 “구미 여행 중에 여성 작가 한 분이 그곳 주부에게 자녀가 5명이라 했더니 단박에 핸드백에서 아나보라를 꺼내 권하더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피임=선진국’의 도식을 강화한 광고를 실었다. 그해 4월에는 타임지 기사를 근거로 “‘문맹인’이던 대만에서도 자궁 내 삽입장치가 점점 먹는 피임약으로 전환된다”고 강조했다. 1968년에는 ‘아나보라 가격인하! 왜 가격을 인하하나?’라는 제목으로 “가족계획 사업의 중요성에 비춰 정부에서 피임약의 대량, 염가 공급을 위해 관세를 면세했다”고 소상히 알렸다.
가족계획 사업은 “인구가 줄어야 1인당 GNP를 높일 수 있다”는 경제 논리에서 출발한 국가 시책이었다. 출산율 전국 1위 마을을 출산율 0%로 만든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파견된 가족계획 요원의 이야기를 풍자한 2006년 개봉 영화 ‘잘살아보세’처럼 없는 살림에 입이라도 줄이는 게 당대의 지상과제였다.
1960년까지만 해도 여성 한 명이 낳은 자녀 수가 평균 6명에 달했다. 1960년대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단산하자”, 1970년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달라진 가족계획 표어처럼 출산율은 뚝뚝 떨어졌다. 급기야 5억 명의 인구폭발을 우려했던 2065년이 되면 지금 추세라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4302만 명에 불과해 ‘인구 절벽’의 재앙을 걱정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출산 억제를 강조하던 옛날이나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몰아붙이는 지금이나 인구를 경제 논리로 접근한다는 점에선 별반 다르지 않다. ‘인구폭발론’과 ‘인구절벽론’의 양극단에서 여성의 몸은 국가 관리의 대상이 됐다. 목표치를 정하고 출산율에만 초점을 둔 정책은 마뜩잖다. 중요한 건 인간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