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792> 및 빼기 운동
/이진원 교열부장
엄연히 입말체(구어체)와 글말체(문어체)가 나뉘긴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 고수들은 “말 하듯이 글을 써라” 한다. 글을 쓴 뒤에는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도 한다. 과연, 강약-장단-고저가 어우러져 리듬감이 있는 글은 이해하기도 쉽다. 입말체로 쓰려면, 가장 먼저, 글말체에서만 쓰이는 말을 없애야 할 터.
‘관객의 영화 선택을 돕기 위해 영화 줄거리 및 평론을 쓰며, 언론매체에 기고도 합니다.’
이 문장이 껄끄러운 이유가 뭘까. 표현을 바꿔 보자.
‘관객의 영화 선택을 돕기 위해 영화 줄거리와 평론을 쓰며, 언론매체에 기고도 합니다.’
두 문장에서 다른 것은 단 하나, ‘및’이 ‘와’로 바뀐 것뿐이다. 그럼에도 둘째 문장은 훨씬 리듬감이 생겼다. ‘및’이 바로 걸림돌이었던 것. 사실, 말할 때 ‘및’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라도 “쟁반에 사과와 배, 밤이 있다”고 하지, 대체 누가 “쟁반에 사과와 배 및 밤이 있다”고 하겠는가. 대체 어느 학생이 “선생님, 이번 시험 과목은 영어, 수학 및 국어인가요” 하겠는가.
우리 말글살이에서 ‘및’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따위 법률 이름이다. 그 다음은 행정관청인데, 부산시청 어느 부서 담당업무 소개는 이렇다.
‘차량 운행 및 관리/시청각기록물 등 시정활동 자료 보존 및 관리/기자회견장 운영 및 기자재 관리/시의회 및 감사관련업무(국정감사 포함).’
가운뎃점이나 토씨 ‘와/과’를 써야 할 자리에 빠짐없이 ‘및’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 검경과 행정기관을 주요 취재원으로 삼는 언론 또한 ‘및투성이’ 보도를 쏟아내는 중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 중에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라는 것도 있다. 그러고 보면 ‘및’은 행정용어·관청용어라 할 만하다. 언론에서 걸러주면 좋으련만, 그것도 시원찮으니 ‘및 빼기 운동’이라도 크게 벌여야 할 판이다.
다만, 입말처럼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대행업체들은 식당이나 카페 등과 계약을 맺고 찾은 고객의 차를 대신 주차해주고 삼, 사만 원의 요금을 받는다.’
여기서, 말로 할 땐 ‘삼, 사만 원’이라도 되지만 글로 쓸 땐 반드시 ‘삼만~사만 원’이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삼 원에서 사만 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번 임금 인상으로 직원들은 40~50만 원 정도 월급이 올랐다”에서도 ‘40만~50만 원’이라야 월급 인상이 겨우 40원에 그치는 희극을 막을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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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