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 풍속도] ⑨. 중학교 입시전쟁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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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병’ 뺨치는 살벌한 경쟁의 병폐 ‘국 6병’

동아출판사가 부산지역 30개 중·고교 입시 수석합격자의 면면을 실은 1964년 4월 6일 자 부산일보 전면광고. 동아출판사가 부산지역 30개 중·고교 입시 수석합격자의 면면을 실은 1964년 4월 6일 자 부산일보 전면광고.

“축 수위합격! 피땀으로 맺어진 영광된 보람 길이 빛내자”라는 문구와 함께 30명의 수석 합격자 사진과 출신학교·이름이 전면광고에 실렸다. 광고 속 주인공 중 15명은 중학교에 수석 합격한, 지금은 초등학생으로 불리는 국민학생이다. 1964년 4월 6일 자 부산일보 4면에 실린 동아출판사의 광고다. 경남중, 경남여중, 개성중, 부산여중 합격자 전원의 명단이 실린 광고와 “오전 5시쯤 일어나 그날 배울 공부를 예습했다”는 중학교 수석 합격자의 합격담도 심심찮게 신문에서 보이던 때였다.

1969년 소위 ‘뺑뺑이’인 중학교 무시험 추첨 배정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 중학교 입시는 요즘 고3 수험생의 입시전쟁을 방불케 했다. 지원자가 세칭 일류 중학교에 몰리면서 경쟁률은 3 대 1을 훌쩍 넘겼다. 1964년 12월 ‘6년 형설의 결전 전기 중학교 입시’란 기사는 “이날 부산 시내가 학교로 몰려가는 대절 때문에 차가 귀했고, 고사장 안팎엔 몰려든 학부형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흡사 입시지옥을 연상시킨다”고 썼다. 1960년 대통령 선거 때문에 중학교 입시 날짜를 연기하자 신문에선 “위정자의 휴머니티가 있다면 입시 일자를 변경할 것이 아니라 선거 일자를 바꿨어야 한다”며 길어지는 시험지옥을 걱정하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국민학생들은 잠을 쫓기 위해 각성제를 먹으며 밤늦게까지 과외를 다녔는데, 1967년 조사에선 한 반 75명 중 29명이나 각성제를 사 먹는다고 답할 정도였다. 심신 발육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허약해진 아이들을 겨냥한 약 광고도 넘쳐났다. “입시가 다가온다 감마론을 먹자”는 광고를 비롯해 “입학시험 겁을 없애는 약”(하모니 정), “입시 준비 과외공부를 이기는 체력”(프리모보란 주사액) 따위로 국민학생 학부모를 공략했다. 스위치를 돌려 4지 선다 정답을 맞추는 국민학생용 ‘티칭머신(자동학습기)’ 광고는 ‘국 6병’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공부에 내몰렸던 시대의 산물이다.

중학교 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이 양산되면서 재수학원도 광고에 열을 올렸다. “나쁜 친구와 타협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금년도 입학률 98%”를 강조한 중학입시반 광고, “학원간다는 핑계로 헛된 시간 낭비하는 학생이 없도록 국내 최초 통학버스를 운행한다”는 학원 광고도 보인다.

1968년 ‘부산·경남 마지막 입시지옥…중학교 원서접수’ 기사엔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예년엔 일류 중학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이 2, 3류 중학에 지원했는데, 금년엔 모두 일류 중학을 지원했다”면서 “올해 마지막으로 시험을 쳤다가 떨어지면 내년에 제비를 뽑아 운 좋게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겠다는 학부모의 계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입시에 목숨 거는 ‘스카이캐슬’의 욕망은 그때라고 덜하지 않았다. 논설위원 ttong@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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