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온 겨울 진객 내쫓는 ‘수상 폭주족’
세계 최대 철새 도래 지역인 부산 낙동강 하구 일대가 수상오토바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철새를 향해 수상오토바이가 폭주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관련 기관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최근 멸종위기종의 개체수도 급감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 따르면 지난 3일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2급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큰고니 떼가 수상오토바이에 쫓겨 달아나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낙동강 하구 수상오토바이 돌진
큰고니 떼 등 도망가는 일 ‘빈번’
철새 개체수도 갈수록 줄어들어
지자체·해경은 책임 떠넘기기만
당시 큰고니 떼는 수상오토바이의 위협에 급하게 날아올라 하굿둑 일대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아났고, 수상오토바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하굿둑 쪽으로 향했다. 멸종 위기종으로 정부에서 보호하는 철새임에도 사고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월 6일에는 수상보트가 큰고니 떼를 향해 돌진해 고니 무리가 황급히 하굿둑 일대를 벗어나 도망가는 일이 발생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예전에는 한 해 평균 3000여 마리의 큰고니가 낙동강 하구를 찾았지만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는 개체수가 1000마리대로 급감했다. 통상 한 해 개체수가 떨어지면 다음 해에는 다시 3000마리가량의 고니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2년 연속 1000마리 개체수가 유지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쇠제비갈매기도 지난 2013년 이후로 번식 개체수가 완전히 사라졌다.
습지와새들의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철새 도래 지역의 관리 부실이 철새들의 기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장은 “낙동강 하구 일대는 1966년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조건이 빼어나, 여름철과 겨울철을 포함해 총 10만여 마리가 방문하는 최대 철새 도래지였다”며 “새들은 예민해서 이런 사고를 경험하면 다음부터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번식 개체 감소로 이어질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고를 막고 방지하기 위한 관리 체계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문화재보호구역 내 수상오토바이 등으로 인한 멸종 위기종 위협은 수상레저안전법으로 처리돼 구청과 해경 관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하구청 측은 보호구역 감시 등 관리를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 한다고 말했지만, 에코센터 측은 “우리 관할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해경도 ‘내수면’은 지자체 관할이라는 입장이다. 해경 수상레저계 관계자는 “레저용 수상보트 사업자 등록은 담당하고 있지만, 보트 운행 허가 여부는 해경의 관할이 아니다”며 “해수면으로 원거리 운행을 하면 해경이 대응하지만, 내수면 쪽 운행은 지자체 관할”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하루에 100종 이상의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문화재보호구역인 낙동강 하구 일대가 ‘관리·감독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중록 위원장은 “시청과 관할 구청이 나서서 24시간 감시망 CCTV 등을 설치해 이 같은 ‘참극’이 벌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며 “관리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사고를 방지하고 세계 최대 철새 도래 지역인 낙동강 하구 일대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