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⑩ 사교계 여왕 선발
버젓이 신문에 실린 유흥업소 여종업원 지상 품평회
옛날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는 극단적으로 나누면 가정주부와 술집 여자, 딱 두 부류였다. 남성과 여성의 일을 칼같이 나눈 성 역할 고정관념과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바라본 성적 대상화의 산물이었다. 광고 속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거나, 남성에 의해 선택되고 소비되는 욕망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여성은 주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광고에 비친 소주만 해도 남성과 여성의 용도가 달랐다. 1972년 4월 대선소주는 “소주 맛은 거칠고, 수수한 사나이 같은 풍미”라며 “소주는 남성의 것”이라고 못 박았다. 같은 해 9월 요리강습회 소식과 함께 여성을 겨냥해 내놓은 대선소주 광고는 확 달랐다. “아빠의 이른 귀가를 기다리며 주부는 무척 행복합니다”라는 카피를 달고, “술을 사용해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살릴 수 있으며, 값싸고 맛이 우수한 대선소주로 요리 맛이 더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같은 소주였지만 남성에겐 즐기려고 마시는 술이었고, 여성에겐 요리에 사용하는 맛술이었다. 간장과 술을 함께 만들던 마산 백광양조장은 “아빠는 백광술, 엄마는 백광간장. 우리집은 행복한 백광가족”이라는 카피로 술 마시는 아빠와 가사노동을 하는 엄마의 성 역할을 확실히 갈라놓았다. 위장약 광고도 “남편의 위장병은 아내의 책임”이라고 대놓고 질책하던 때였다. 설사 술을 선택할 때도 독한 술은 남성용이었다. 1963년 광고에서 크라운OB총판은 “여성들이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 어쩐지 점잖지 못하다”며 “여성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술은 맥주뿐”임을 강조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광고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도 차고 넘쳤다. 그중에서도 1971년 8월 26일 자 부산일보 4면과 5면에 걸쳐 한 잡지에서 낸 ‘제1회 부산지방 사교계의 여왕 지상 선발대회’ 광고가 대표적이다. 유흥업소 30곳의 여종업원 인물 사진과 함께 나이, 이름, 업소명까지 밝히고 소위 ‘사교계의 여왕’을 뽑는 지상 품평회 광고였다.
“출전한 미희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용모와 풍부한 각선미를 과시한다”는 문구에서 남성 욕망의 관음증적 서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밀실에서 마음에 드는 여종업원의 몸을 훑어내리던 남성 특권의 시선이 신문 광고에까지 버젓이 진출한 거다. 당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인기를 끌자 이에 편승해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미인 선발대회의 아류로도 보인다. 정형외과 의사, 피부과 의사, 양장점 대표, 특허사무소 소장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포즈와 각선미에 중점을 두고 심사하겠다”는 기준만 봐도 그렇다. 소위 독자인기투표도 병행했다. “사진을 보고 가장 관능적이고 포즈와 각선미가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출전자 1명을 골라 이름을 적어 보내면 추첨에 의해 화장품 세트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젠더 감수성이 떨어졌던 그때 분위기에서도 대놓고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품평하겠다는 발상이 용납되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해 9월 15일 입상자 결과를 발표한 광고에서 주최 측은 “사교 분야의 양식 부족에서 오는 서비스걸들의 천시 풍조를 개선할 마음”이었다고 행사 의도를 극구 해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이아가라클럽, 로얄카페, 도원클럽, 본전홀에서 나온 여종업원이 ‘사교계의 여왕’으로 뽑혔고, 입상자를 배출(?)한 유흥업소 4곳은 왕관을 쓰고 봉을 든 여종업원의 전신사진을 크게 싣고 업소 소개 광고를 뒤따라 냈다. 주최 측은 “수많은 격려에 제2회 행사는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지만, 제2회 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은 그 뒤에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