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⑪ 혼·분식 장려 운동
값싸고 칼로리 높은 음식이 ‘대접’받던 시절
“당신도 체중이 늘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1960년대엔 ‘살찌는 약’ 광고도 흔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며 입맛을 돋우고 상용하면 체중을 늘게 한다”는 소화제 베스타제, “단백동화작용을 촉진해 체력강장으로 자연 살이 찌게 된다”는 호르몬제 듀라보린 주사액 광고가 대표적이다. 회전의자 돌리는 배 나온 사장이 출세의 표상이던 시절이었다.
‘비만이 미덕’이라서 모든 건 ‘칼로리’로 통했다. “라이온 식빵 한 개의 열량은 2324㎉로 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과 맞먹는다”. “분식은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 라이온 식빵은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부강하게 한다”는 카피로 삼협제빵이 1969년 2월 6일 자 부산일보에 낸 광고다. 칼로리를 따져가며 먹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그땐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고칼로리를 우대했다는 점에서 요즘과는 판이하다. 1963년 광고에서 OB크라운 총판은 “300㎉나 되는 맥주 한 병의 열량으로 여러분의 온몸은 훈훈해질 것”이라며 “이래서 맥주는 예부터 ‘마시는 빵’이라고 했다”는 걸 강조했다. 술은 ‘살찌는 물’이었고, 술의 효용 가치도 고칼로리를 내세웠던 시대였다.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지만, 주식인 쌀은 턱없이 모자랐다. 쌀 소비량이 줄어 난감한 요즘과 달리 그땐 쌀밥을 원 없이 먹는 게 바람이었다. 원조물자로 미국산 밀가루는 넘쳐나는 대신 흉작에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962년 11월 정부는 본격적인 ‘혼·분식 장려 운동’에 돌입했다. 말이 ‘장려’이지 실제론 ‘강제’였다. 주부궐기대회에선 “혼·분식을 하지 않는 요식업체에선 음식을 사 먹지 않겠다”는 결의를 했고, 학교에선 도시락 검사로 30% 이상 잡곡을 섞지 않은 학생을 적발해 성적을 깎고 벌씌우고 학부모를 불렀다.
잡곡밥이 몸에 좋은 건 틀림없지만, 그때 주안점은 경제성이었다. 1971년 신한제분은 밀을 쪄서 건조·도정한 발명특허품 ‘신한밀쌀’을 내놓았는데, “값이 싸고 밥이 4배 이상 늘어나 경제적”이란 대목에 방점을 찍었다. 1973년엔 고구마와 감자, 밀을 주원료로 한 신개발품이라며 ‘애국미’도 대대적인 광고에 나섰다. 역시 “쌀과 같은 무게라면 애국미의 양이 더 많고 값이 싸다”는 경제성을 강조했다.
혼·분식 장려 운동엔 라면 업계와 제빵 업계가 앞장섰다. 삼양라면을 내놓았던 삼양식품은 1968년 “쌀 70만t(1억 3000만 달러어치)을 차관 도입하지 않으려면 온 국민이 일주일에 2.5끼만 분식을 하면 된다”고 광고했다. 아리랑 비타 라면을 출시한 풍국산업은 1969년 “하루 한 끼씩 수개월 후면 여러분의 체력과 귀여운 자녀들의 건강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1969년 11월 22일 자 부산일보엔 삼미식품이 전면을 털어 기사형 광고를 냈다. “식빵은 개당 540g으로 시중 식빵보다 100g이나 더 가중한 것으로 4인 가족이 한 끼 식사를 대용하는데 가격은 불과 50원”이라며 값싸게 살찔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같은 지면에서 부산시의사회 회장의 말을 빌려 “일본은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쌀밥으로 하고 두 끼는 분식으로 바꾼 이래 국민평균수명도 늘어 30년 전 40세였던 것이 현재는 70세 이상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60세 이상이라는 사실은 국민 식생활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분식을 해야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논리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 강조한 것이다. 1971년 삼미식품은 “분식을 주식으로 하는 구미 사람이 키와 몸무게가 동양 사람보다 월등히 크고 건강한 이유는 빵의 주성분인 밀가루 덕분”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 서양에 대한 동경으로 밀가루 예찬론이 활개 치던 때였다. 쌀은 미개의 상징이었고 밀은 문명의 척도였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