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웅크린 아이들… 감정의 눈높이 맞춰 주세요

권상국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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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고 짜증 나면 그걸 가라앉히려고요.”

“마음이 힘들 때 상처를 내면 내게 관심을 가져주니까요.”

“잘못을 했으니 내가 나에게 벌을 주는 거예요”

놀랍게도 이 이야기들은 자해 청소년들이 ‘내가 자해를 하는 이유’로 꼽은 말들이다. 차이는 있지만 스트 레스나 복받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뻔히 나쁜 줄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다.

의지 갖고 목숨 끊으려는 행위 ‘자살’

스트레스 덜고 살고자 하는 행위 ‘자해’

스트레스 관리 서툰 청소년 시기

신체 훼손하며 심리적 고통 덜기 시도

수치심·죄책감 등 지속돼 자해 반복도

꾸준한 스킨십·적극적 공감 통해 예방

성급한 해결보다 전문가 상담 효과적

자해는 살기 위한 아이들의 몸부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접속해 ‘자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 본다. #자해사진 #자해하는사람은나쁜사람아닙니다 등등 수 만개의 사진과 글귀가 화면을 채운다. 이 중에는 이른바 ‘자해계’라는 것도 있다. 부모 몰래 자신이 낸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아이들의 비밀 계정이다. 차마 부모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한 속내를 자신의 자해 사진과 함께 올려두는 용도다. 사진 아래로 따라붙는 또래의 댓글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한창나이에 밖으로 분출해야 할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하니 안으로 곪는 아이들만 늘고 있다.

상담 전문가들은 자해와 자살 시도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의지를 가지고 목숨을 끊으려는 자살 시도와 달린 자해는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살고자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보듬어 줘야 할 가정과 학교는 여전히 자해에 무지한 상태다. 교육부에서도 불과 2년 전까지 자해와 자살 시도를 한 데 묶어서 관리해올 정도로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부산시교육청에서도 2018년 처음으로 자해와 자살 시도를 구분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지난해 부산의 초·중·고등학생들은 모두 132건의 자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깊이 숨어든 자해는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부산 생명의전화 하은경 상담실장은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에 그동안 자살이나 자해에 대해서는 현황 파악이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년 3월에 실시되는 청소년 정서검사에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이마저도 솔직하게 답하지 않아 결국 또래 관계를 분석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아이의 감정에 동화되어 보는 게 최우선

마음이 여물지 않은 청소년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서툴다. 그러다보니 신체를 훼손하면서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심리적인 아픔을 신체적인 아픔과 맞바꾸는 셈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반드시 그 직후 자괴감과 수치심,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우울한 상태가 이어지면 자해가 또다시 자해를 낳고 끝내 자살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부모는 과연 어디서부터 신경을 쓰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아이가 스트레스에 취약하지 않은지 체크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래에 비해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내는지 △외부 자극이나 분위기에 민감한지 △감정이 복받치면 이를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의 행동 편차가 심한지 등을 눈여겨 봐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함께 목욕하는 걸 자제하기도 하는데 가끔 함께 목욕을 하는 행위도 스킨십을 나누고 자녀의 자해 징후를 미리 포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해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성급하게 다가서지 말고 상담부터 시작하라는 게 전문가의 충고다. 자해를 반복하는 걸 막기 위해 억지로 아이에게 다가갔다가 아이와 충돌하는 일도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은경 실장은 “자해가 이번이 처음인지, 아니면 수년째 반복됐는지부터 파악하고 부모의 애착이 부족했는지, 단순 성격장애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며 “친구들 사이에 인정받고 싶어 자해를 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상담센터나 정신과에서 정확한 자해 원인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해에 빠지는 이유도, 상황도 상담 사례마다 천차만별이다. 결국 즉각적으로 자해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긴 시간을 내다보고 한 명의 전문가와 꾸준히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

자녀가 자해한 사실을 비난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려 말고 아이가 고립된 상황, 힘든 감정을 같은 눈높이에서 느끼고 이해하려 할 때 말문이 열린다.

가정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담임과 보건, 상담교사가 함께 위기학생을 관리할 필요도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자해를 자살 시도와 별건으로 보고 매뉴얼을 장만해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자해 관련 강의를 신설하고 별도의 상담 창구도 마련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학교생활교육과 변용권 과장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친구 문제로, 고등학생은 진로 문제로 부모와의 충돌도 잦아지고 있고 자해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요구되고 있다"며 “그동안은 자해와 자살 시도를 동일한 행위로 봤기 때문에 별도의 방지 매뉴얼이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보다 전문적으로 학생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은경 실장 역시 “기존에는 학교에서도 관심이 온통 모범생과 문제아, 양 극단의 학생에게만 쏟아졌는데 중간에서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 가는 이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디”며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자해로 발현됐는데 뒤늦게 가정에서 이를 고치겠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는 만큼 교육 당국에서도 함께 책임감을 나누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며 이 같은 인식변화를 환영했다.

권상국 기자 edu@busan.com



권상국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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