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 기각 결정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심사한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였다. 새 정부가 ‘물갈이 인사’를 위해 공공기관 주요 보직자의 사퇴 동향을 살핀 점이 현행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더라도, 적폐청산이 시급한 탄핵 정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벌인 뒤 26일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환경부 산하 물갈이 인사

국정농단으로 방만해진 기관

정상화 위한 특수성 감안해야”

이날 영장 기각 사유는 이례적으로 길고 구체적이었다. 박 부장판사는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청구하고 표적 감사를 벌인 혐의에 대해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정 △해당 임원 복무감사 결과 비위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기관 소속 인사들의 방만한 기관 운영이 문제가 컸던 만큼 환경부 산하기관의 ‘물갈이 인사’는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처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검찰이 문제 삼는 혐의들이 탄핵 정국 이후 필요한 적폐청산의 과정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이 같은 법원의 결정은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청와대를 겨냥하던 검찰 수사 일정의 차질도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은 일단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를 비롯한 향후 수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특히 법원이 공공기관장 임명 전 청와대와의 인사 협의는 관행으로 보이며 환경부 장관의 정당한 인사권·감찰권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사실상 청와대의 ‘블랙 리스트가 아닌 체크 리스트’ 주장에 힘을 실어 준 것에 안도하는 표정이다.

반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과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은 매우 유감이며, 결국 블랙리스트에 관여된 330개 기관, 660여 명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청와대 대변인은 물론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분까지 사법부를 압박한 게 제대로 작동했다”고 비판했다. 전창훈·김종열 기자 bell10@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