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⑮ 체험 후기
“이 약 먹고 나았다”는 감사 광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여기 기적과 같은 사실이 있기에 알려드립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60대 사내의 광고가 1971년 5월 24일 자 부산일보 8면에 실렸다. 중풍으로 쓰러져 사나흘 의식을 잃었고 보름간 반신불수로 꼼짝도 못했는데, 중국인 한의사의 비방과 영약으로 쾌차했다는 감사 인사 광고였다. ‘소아마비와 중풍의 기적’이란 큼지막한 제목 아래 서지도 못하던 네 살 아이가 자유롭게 걷고, 생후 9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린 열두 살 소녀가 석 달 약을 먹은 뒤 스케이트까지 타고,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쉰여섯 살 먹은 이가 딱 두 달 약 먹고 완쾌됐다며 다른 환자들의 기적 같은 치유담까지 굳이 보탰다. 완쾌된 뒤 자전거를 타고 놀거나,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이들의 사진까지 함께 실어 긴가민가한 의심의 눈초리를 막았다.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감사 광고를 실었다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곳 아니다. “신문에 감사문을 낸 것을 보고 반신반의하면서도 환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가 선생님의 치료를 받은 결과 완쾌됐다”고 털어놓는 걸 보면 이런 감사 광고가 그전에도 있었지 싶고, 광고를 내면서도 제 발 저린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적지 않은 광고비를 들여가면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냈다는 것도, 일일이 환자의 사연까지 취합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도 선의로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한의원이 60대 사내의 이름을 빌려 광고를 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지 싶다. 병을 고쳤다는 한의원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광고는 대개 난치병 환자의 절박한 처지를 파고든다. ‘신경통·관절염 환자에게 권유함’이란 제목으로 모 신문사 편집국장이 1959년에 실은 광고도 그랬다. “9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타박상을 입고 난 뒤 좋다는 약을 다 먹어도 병세가 악화되고 걷지도 못해 결국 휴직했다”면서 “후루마찡을 복용하고 나았다는 기사를 접한 뒤 복용 2주일 만에 효과를 보고 복용 3개월 만에 복직까지 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면서 그 역시 “다른 광고의 허언에 너무 속아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며 독자의 불신에 일찌감치 방어막을 쳤다.
1962년 한일쾌유기상사는 위장병과 신경통에 특효라는 쾌유기를 광고하면서 ‘뇌분열증’을 앓던 아들 때문에 고생하던 진주 고무신 가게 주인의 사연을 크게 다뤘다. 신약, 한약, 침, 뜸 가릴 것 없이 좋다는 건 다하고 무당굿도 몇 번이나 해봤지만 효력이 없다가 신문 광고를 보고 쾌유기를 사용하자 재발이 없어졌고, 심지어 환자 보호자인 그도 감기와 축농증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구포 사는 강 여사라는 이는 위장병을 앓아 6년 세월을 죽으로 연명했는데, 쾌유기로 치료해 척추가 바르게 됐고 어지러워 못 타던 전차까지 타고 현기증까지 씻은 듯 없어졌노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시력까지 좋아져 고운 명주로 저고리까지 만들어 입었다고 했다. 가히 만병통치약이다.
‘삼태자(三胎子)의 인공포육기’라는 제목으로 전포동에서 세쌍둥이를 홀로 키우는 사내의 사연을 실은 어린이 영양제 원기소 광고는 눈물겹다. 1956년 12월에 실린 이 광고에서 사내는 세쌍둥이를 낳은 지 32일 만에 숨진 아내와 소화불량으로 보채는 아이들의 애달픈 사연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제약회사에서 보내온 원기소를 먹인 뒤 화색이 돌고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이들의 근황과 얼마나 먹기에 편하면 약을 과자로 알고 주워먹는다는 세쌍둥이의 후일담을 사진과 함께 실어 광고 효과를 극대화했다.
‘선진’ 외국의 사례를 끌어와 신빙성을 높이는 전략도 사용됐다. 신경통 치료제인 에지독스를 소개한 1962년 광고에서는 미국 하버드 대학 바우어 박사의 증언을 빌려왔다.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 없던 환자가 이 약을 먹고 잠시 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며 “신경통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서광을 비춘 이 약의 발명을 찬사했다”고 약효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유명인사를 내세운 체험담도 넘쳐났다. 1965년 이몽 미백크림은 “거친 살결로 팬들 앞에 서는 게 걱정이었는데, 친구 권유로 사용한 뒤 부드러운 살결을 얻었다”는 가수 이미자의 체험담을, 1962년 호프 포마드는 ‘합죽이’ 배우 김희갑을 내세워 “스타가 절대 자신을 갖고 권하는” 머릿기름을 홍보했다.
체험 후기는 의약품과 화장품을 넘어 거의 전 분야에서 광고 소재로 활용됐다. 1981년 영어회화교재를 낸 정철 카세트는 “속는 셈치고 직장 동료의 권유에 따랐던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무역회사 직원의 체험담을, 1986년 학습지 아이템풀은 “이런 편지가 많이 온다”면서 부산 고입 선발고사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편지 전문을 그대로 게재했다. 신뢰감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살아보니 좋더라”는 아파트 광고, “먹여보니 좋더라”는 분유 광고, “타보니 좋더라”는 자동차 광고에 이르기까지 “써보니 좋더라”는 입소문은 귀 얇은 소비자의 주머니를 그렇게 털어갔다.
거짓 체험담이나 조작된 상품평을 올려 ‘지름신’을 부르는 낚시성 광고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인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중에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을 악용한 연출된 체험 후기는 특히 용서하기 어렵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