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를 가다] ‘겉도는’ 정화활동에 쓰레기장 방불… ‘새 없는 도래지’ 전락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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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대마등, 도요등 등 모래톱과 갈대숲이 버려진 그물 등 폐어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2일 본보 곽진석 기자와 동행한 초록생활의 백해주(오른쪽) 대표가 을숙도 남단에서 폐그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대마등, 도요등 등 모래톱과 갈대숲이 버려진 그물 등 폐어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2일 본보 곽진석 기자와 동행한 초록생활의 백해주(오른쪽) 대표가 을숙도 남단에서 폐그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여기가 ‘천연기념물 179호 철새도래지’로 지정됐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지난 12일 오전 동양 최대 철새 도래 지역으로 꼽히는 부산 낙동강 하구 일대. 물떼새와 쇠제비갈매기 등 봄 철새 번식 시기인 이맘때쯤 모습을 비춰야 할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곳 일대는 200여 종 철새들이 매년 찾는 지역이지만, 이날 찾은 을숙도 남단과 도요등, 대마등 일대에는 방치된 쓰레기 더미 위로 파리만 날아다녔다. 낙동강 하구는 상류에서 흘러온 풍부한 영양염류 등으로 다양한 생물 서식 환경에 적합해 1966년 정부에 의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강바닥엔 수십 개 폐그물 박혀

섬 안엔 술병·스티로폼 ‘산더미’

각종 쓰레기로 섬마다 악취 진동

부산시·지자체 ‘따로’ 정화사업

전문 장비 없이 수작업으로 청소

폐그물 수십t 등 수거 불가능

방치 쓰레기로 생태계 교란 가속

고니 등 철새 개체 수 갈수록 줄어

오전 11시께 보트를 타고 찾은 을숙도 남단. 섬과 가까워지자 강바닥에 ‘검은 물체’가 일렁이며 악취가 풍겼다. “버려진 폐그물입니다. 필요 없어져서 누군가 버린 거죠.” (사)초록생활 백해주 대표가 힘겹게 들어 올린 물체는 최대 200m 길이에 달하는 고기잡이용 폐그물이었다. 그물 곳곳에는 각종 물고기와 이름 모를 새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썩어 있었다.

갈대로 가려진 섬 안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수백 개의 술병과 플라스틱 용기, 스티로폼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이곳 옆 물길로 천연기념물 201-1호로 지정된 고니 2마리가 유리섬유 재질의 포대를 쪼아대다 폐그물을 피해 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도요등과 대마등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도요새와 물떼새가 매년 수천 마리씩 찾아와 이름 지어진 도요등에는 정작 폐통발과 각종 쓰레기만 난무했다. 철새들의 주 먹이 사냥지인 대마등 일대 갯벌은 수십 개의 폐그물과 일회용품 용기 등이 썩은 채 박혀 있어 악취만 가득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정화사업

이같은 문제로 부산시는 매년 ‘하천·하구 쓰레기 정화사업’(이하 정화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부산시와 지자체가 철저히 분리된 정화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화사업은 부산시 산하 낙동강관리본부가 낙동강 하굿둑을 기준으로 위쪽 담수면 부지의 정화사업을 담당하고, 그 아래 해수면 부지는 지자체인 사하구와 강서구가 담당하고 있다. 이원화된 정화사업으로 부산시는 양 지자체가 낙동강 일대에서 벌이는 정화사업 면적과 쓰레기 미수거 지역 현황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하구는 해안선 48.5㎞ 길이, 강서구는 해안선 46.5㎞를 따라 정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인력은 50여 명의 어민에 그친다. 이렇다 할 전문 장비 없는 수작업 청소 방식에 작업 효율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백 대표는 “낙동강 일대에 쓰레기만 1만t 이상으로 추정되고 매년 새로운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며 “수십t의 폐그물과 무거운 쓰레기는 지금 방법으로 수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크레인을 동반한 전문청소업체가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낙동강관리본부와 구청 측은 강 위에서의 작업이라 어쩔 수 없이 어민들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낙동강관리본부 관계자는 “낙동강 정화사업을 전적으로 도맡아서 할 업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낙동강 지리를 잘 아는 지역 어민들이 어구 주변과 낙동강 하구 모래톱과 섬을 위주로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을 떠나는 철새들

부산시와 각 지자체에서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지속하는 쓰레기 문제가 생태 교란으로 이어져 ‘새 없는 낙동강’이 도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환경단체 습지와새들의친구 자료에 따르면 동아시아 최대 쇠제비갈매기 번식지로 꼽히던 낙동강 하구에서 2014년부터 번식 개체 수 확인이 힘들 만큼 적은 쇠제비갈매기가 관찰되고 있다. 또 낙동강 하구는 한국을 찾는 고니의 70% 이상이 도래하는 ‘한국 최대 고니류 월동지’라는 수식어도 잃게 됐다. 2005년 평균 2500여마리의 고니가 찾아왔지만, 2017년에 이어 지난해에는 100마리도 채 관찰되지 않고 있다. 습지와새들의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철새 개체 수 감소는 곧 낙동강의 생태계 건강 지수 감소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시와 지자체가 분할해 정화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낙동강 하구 수면 부지가 지자체 담당 구역에 속해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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