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⑯병영국가
교련과 학도호국단으로 연병장이 된 학교 운동장
“총·수류탄 판매 개시!”라는 광고가 1972년 5월 18일 자 부산일보 6면에 실렸다.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사고팔아도 큰 사달이 날 판에 대놓고 수류탄까지 팔겠다는 간 큰 광고는 충격적이다. 총기 소지가 엄격하게 규제된 한국에서 무기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어떻게 신문에까지 버젓이 실릴 수 있었을까? 작은 글씨로 “사격대 시설, 간호용 구급 보조재료 일체”라는 문구가 뒤따르는 자그마한 광고인데, 추가 설명이 없어서 궁금증은 더하다.
그해 2월 24일 자에 실린 광고에서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철통같은 국가안보로 북괴야욕 분쇄하자!”라는 격문 아래 학교와 단체에 교육 기자재를 공급하던 부일상사가 낸 광고다. “국가 비상사태에 즈음해 안보 교육에 절실히 필요한 교련복 및 장구 일체를 선구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부산에 본사를 두고 안보 훈련 실시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업체의 인사 말씀에 미뤄보면 교련 수업에 필요한 모의 수류탄과 총기류를 판다는 광고로 보인다. 마산 진주 울산 밀양 창녕 의령 거제 하동 합천 함안 삼천포 산청 충무 고성까지 지점을 낸 걸 보면 판매망도 탄탄하고 수요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학교 운동장이 군 연병장을 방불케 하던 시절이었다.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김신조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인 1969년, 북한 비정규전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교련이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채택된 뒤의 풍경이다. 교련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은 아예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등교했고, 운동장은 모의 소총을 들고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하는 학생들의 구령과 고함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학교의 병영화는 교련과 함께 학도호국단 조직을 통해 완성됐다. 1975년 이후 학생회는 유사시 쉽게 동원될 수 있게 군사훈련 편제를 빼닮은 학도호국단으로 바뀌었다. 총학생회장 대신 학도호국단장이 학생을 대표했다. “배우면서 싸우자”는 기치 아래 개인보다는 단체, 자율보다는 규율이 강조됐다. 군대를 뺨치는 일사불란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북한이란 적과 마주한 특수한 안보환경에서 공산주의와 북한을 악마화하는 반공포스터와 반공웅변대회로 학생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이 되면 으레 ‘북괴’의 만행을 잊지말자는 광고가 실렸다. “상기하자 6·25, 분쇄하자 북괴 재침 야욕”이란 표어 아래 1974년 6월 25일 자 부산일보 6면에 실린 광고도 그중 하나다.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을 담은 사진과 함께 부산시장· 경남도시자를 비롯한 지역 유력인사 55명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전면광고는 준전시 분위기를 조장하는 병영국가 시대의 강력한 선전물이었다. “방첩·승공으로 자유·평화를 사수” “잔악한 북괴는 인류의 적, 단합한 우리 모두 파수꾼 되자”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1973년 3월 12일 자 부산일보 3면에는 부산시장이 위원장을 겸한 부산지방병무사범방지대책위원회 명의의 광고가 실렸다. 입영기피자 인적사항을 공개한 광고였다. 입영을 기피한 7명의 이름은 물론이고 인물사진과 생년월일, 본적과 주소가 낱낱이 실렸다. “아직도 군에 안 가겠다는 뒤떨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들 본인과 친권자들의 인적 사항을 공개해 당사자는 물론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회기풍을 조성하겠다”는 게 입영기피자 신상공개의 명분이었다. 병역 담당 공무원이 시골집 담벼락에 붉은색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던 때였다. 살인·강도를 저지른 흉악범보다 더 가혹한 공개적 망신주기를 통해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인권침해라는 목소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1960년대 초반 대대적으로 병역의무 불이행자 자수 신고를 받았을 때 41만여 명이나 신고했을 정도로 병역 기피는 고질적인 병폐였다. 병역 기피 공무원과 병역 기피자를 고용한 사업주까지 색출하며 국민들을 닦달했지만, 병영국가는 권력과 재벌에겐 한없이 관대했다. 인사청문회마다 고위층의 병역 비리 논란이 불거졌고, 재벌가의 병역 면제율은 국민 평균보다 5배는 높았다. ‘신의 아들’은 자식 세대에도 대물림돼 수많은 ‘신의 손자’를 만들어냈다. 결정적으로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 청와대 벙커에서 열린 긴급안보관계장관 회의 참석자 중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등 수뇌부가 죄다 군대 경험이 없었던 게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예비역들만 괜한 박탈감에 시달렸던 건 병영국가가 만든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