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⑳ 정치와 광고
지지 성명부터 찬성 투표 독려까지 기울어진 의견 광고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 헌법 일부 정지·국회 해산”이라는 1972년 10월 18일자 부산일보 1면 머리기사 밑에 부산금융단 명의의 “10·17 특별선언에 따른 금융인의 다짐”이란 광고가 미리 짜맞춘 듯 실렸다. 같은 날 7면엔 부산시교육회원 일동과 노총부산협의회 의장 명의의 성명서도 실렸다. 그 뒤 부산시 약사회의 ‘10·17 비상선언에 대한 부산 약사 1200명의 결의’와 한국예총 부산시지부의 ‘10·17 특별선언에 대한 부산 예술인 1200명의 결의’를 비롯해 부산항도선사조합, 부산관세협회, 택시여객사업조합, 미원, 동명목재, 태광산업, 성창기업, 진양화학, 삼화고무, 부산은행, 천일여객, 부산해양대동창회 등 단체와 기업의 지지성명이 봇물을 이뤘다. 일주일 새 20곳 넘게 경쟁적으로 지지성명 광고를 내며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7시를 기해 국회를 해산하고(특별선언을 발표할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었다), 정당과 정치 활동의 중지 등 현행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선언이었다.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개정안을 공고해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소위 ‘10월 유신’이다.
헌법 개정안은 행정·입법·사법 3권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향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까지 갖도록 했다. 여기다 대통령 선출 제도도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꾸고, 임기도 6년에 연임할 수 있도록 해 대통령 종신제의 기반을 마련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국력과 국가 기능을 능률적으로 강화함과 동시에 미숙한 정당 정치적 낭비를 극소화한다”는 논리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수사가 등장한 것도 그때부터다.
지지 광고는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투표 참여를 다짐하는 결의 광고로 변해갔다. 11월 18일 자 3면에 부산시관광협회는 “박 대통령의 살신성인의 단장 어린 애정을 우리 관광업자는 깊이 감명하고 다가오는 11월 21일 국민투표에 빠짐없이 참여하겠다”고 다짐했고, 같은 날 6면엔 광명목재가 “1200명 전 종업원 일동은 11월 21일 국민투표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해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을 결의하는 광고를 실었다. 같은 날 7면엔 부산진시장번영회가 “부산진시장 회원 3000명과 종사원 5000명은 11월 16일 오후 6시 시장 옥상에서 10월 유신의 역사적 영단을 절대지지하는 단합대회를 열었다”며 투표 참여를 다짐했다. 울산성모병원은 “국민투표 바로 찍어 유신과업 앞장서자!”라며 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를 실었다.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개헌안에 대한 반대 토론이 봉쇄되고, 일방적인 홍보 공작이 전개된 상황에서 국민투표는 강행됐다. 박 대통령은 “헌법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이것을 남북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 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계엄령 아래 실시된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91.8%의 투표율과 91.5%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개헌안은 통과됐다.
국민투표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다음 날인 11월 22일 박영수 부산시장은 “산기를 무릅쓰고 투표장으로 나오다가 아기를 분만한 산모가 계시는가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을 하루 연기해가면서까지 투표장으로 나오신 상주님, 늙고 병든 가족을 업고 투표장에 나온 자랑스러운 젊은이 등 이 갸륵한 정성 모두가 조국의 번영과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염원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며 시민 감사 광고를 실었다. 11월 23일 정해식 경남도지사는 “투표장에서 ‘유신’이란 이름을 짓게 된 옥동자를 분만하신 산모의 헌신적인 참여 등은 도민의 절실한 의지를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라며 도민에게 드리는 인사말씀을 실었다.
제8대 대통령선거에 단독으로 출마한 박정희 후보는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에서 재적 대의원 2359명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 2357표, 무효 2표라는 99.9%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선거라기보다 지지 대회에 가까웠다.
2018년 12월 대법원은 “계엄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1972년 10월 17일 선포한 비상계엄에 따라 공포된 계엄포고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에 앞서 201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유신 헌법에 따라 내린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2호, 그리고 9호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