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놀 곳 잃고 제대로 못 먹고, ‘어른들 사정’에 멍드는 동심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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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로 활용되다(오른쪽) 최근 폐쇄된 영도구의 한 놀이터. 아이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설이 낡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놀 곳은 줄어들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놀이터로 활용되다(오른쪽) 최근 폐쇄된 영도구의 한 놀이터. 아이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설이 낡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놀 곳은 줄어들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오는 5일은 97번째 어린이날이다. 또 올해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맺어진 지 3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은 충분히 쉬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고 발달 연령에 적절한 놀이를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유엔은 지난해 작성된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의 특성을 반영한 놀이 공간이 부족하며 경제적 이유로 휴식, 놀이, 문화 활동 향유에 차별이 생기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부산지역 아동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날이 무색하게도 부족한 ‘어른들의 배려’ 속에 제대로 놀고, 제대로 먹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부산지역 총 3963개 놀이터 중

아파트놀이터 등 빼면 383개 남아

키즈카페도 지역별로 큰 편차

아이들 ‘놀 권리’ 정책 지원 필요

사상구 지역아동센터 3명 중 1명

비만이거나 비만 위험군 속해

고염분·편식 등 식습관 주 원인

우울증·자존감 저하 이어져 심각

■놀 공간이 줄고 있다

2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지역 놀이터는 총 3963개다. 이 중 유치원, 초등학교 등 660개 교육기관을 제외한 숫자는 3303개. 많다고 느껴지지만, 면면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놀이터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아파트 놀이터로, 2186개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 487개, 식당 내 놀이시설 136개 등을 빼면 남은 놀이터는 383개에 불과하다. 이 놀이터 383개가 부산지역 15세 미만의 아이 38만 2862명이 돈을 내지 않고서,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고 눈치 보지 않고서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의 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부산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그 비율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파트에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놀이터 격차’가 지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일부 아파트에서는 스크린 도어 등을 설치해 아예 출입 자체를 막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등으로 실내놀이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부산지역 아동들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 실내놀이터인 ‘키즈카페’는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부산 키즈카페를 검색하면 총 244개를 확인할 수 있다. 검색 결과 동구는 0개로 15세 미만 아이들 6435명이 이용할 수 있는 키즈카페가 하나도 없으며 영도구는 3개로 9931명이 이 3곳을 이용해야 해 1곳당 3310명이 몰린다. 반면 기장군은 820명당 1개, 강서구는 908명당 1개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박민성 시의원은 “키즈카페의 경우 사업성 등을 고려해 입점을 하겠지만 최근 아이들에게 실내에서 놀 수 있는 키즈카페는 외부 환경에 상관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중 하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의 마음껏 놀 수 있을 권리를 위해 공공에서 운영하는 실내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놀이 ‘터’ 의 부족은 설문조사 결과로도 드러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이 동구지역 초등학생 236명과 부모 2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동이 인식하는 권리환경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재 놀이에 대한 불만족하는 이유’로 놀이를 위한 공간 부족이 21.2%로 가장 높았다. 놀이를 위한 시간 부족 19.5%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강원도, 전남·북, 울산, 경남, 광주 남·서구가 ‘어린이 놀 권리 보장에 관한 조례’를 지정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발의한 광주 서구의회 김옥수 구의원은 “조례가 생기니 어린이 명품공원 놀이터 확충과 같은 놀 권리를 위한 사업이 생기더라”며 “놀 권리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부산은 ‘놀이시설 안전관리에 대한 조례’만 있어 놀이를 안전의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아이들 제대로 먹고 있나?

인제대학교 간호학과 박지영 교수 연구팀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부산 사상구 지역아동센터 17곳의 아동 349명, 부산 북구 지역아동센터 17곳의 368명을 대상으로 비만 유병률 조사를 진행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취약계층 아동의 보호·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사상구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과체중과 비만의 유병률은 각각 13.5%, 20.3%(합계 33.8%)로 이용 아동 3명 중 1명은 비만 혹은 비만 위험군에 속했다. 특히 비만 유병률은 2017년 국민건강통계에서 제시한 소아 비만율 10.1%의 2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북구도 마찬가지였다. 북구 지역아동센터의 과체중과 비만 유병률은 각각 11.4%, 14.7%(합계 26.1%)로 사상구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박 교수는 “편식, 급하게 먹기, 고염분·고칼로리 음식 섭취 등 좋지 않은 식습관이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결과를 분석했다. 실제로 사상구 아동들의 ‘어린이 영양지수’는 58.1점으로 부산시 일반 아동 평균 65점보다 낮았다. 어린이 영양지수는 식단의 균형, 다양성, 절제, 규칙성 등을 종합한 지수다.

박 교수는 “아동의 비만은 단순 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우울증,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또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악순환이 된다”며 “단순히 식비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의 건강한 식생활 증진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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