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㉒ 맞수
경쟁업체 따라하기가 일상인 염치없는 광고 전쟁
삼양라면은 1968년 5월 2일 자 부산일보 1면에 “삼천만 고객에게 이익 분배 단행”이란 광고를 냈다. 61개들이 한 상자에 1개씩 덤으로 주겠다는 광고였다. ‘삼양식품의 기업 정신’을 강조하며 “연간 고객에게 돌아가는 이익 분배액이 6000만 원에 달한다”라고도 했다. 요즘이야 라면 네댓 개 묶음에 하나 더 끼워주는 게 낯설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전에 없던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었다.
삼양라면은 한 달 뒤인 6월 3일 자 부산일보 1면에 “고객 여러분의 요청에 따라” 1500만 원 경품 판매 행사를 연다는 광고를 내고 기존 방침을 뒤집었다. “이익분 배당을 고객에게 세분하려던 것을 중점 배분 방법으로 고치기로 했다”며 라면 1개마다 경품 추첨권을 부여해 특등 6명에게 100만 원씩 주기로 했다. 소액이지만 모든 고객에게 골고루 돌아갈 혜택을 극소수 고객에게 고액을 주는 식으로 바꿨다는 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왈순마라면을 출시했던 롯데공업이 1500만 원을 내걸고 경품행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롯데공업은 1968년 8월 15일 자 부산일보 1면에 밀양 삼랑진읍에 사는 강 모 씨가 특상에 뽑혀 500만 원을 타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다음 500만 원은 내 것”이라는 문구로 2회 차 경품 행사를 진행 중이라는 광고를 잇달아 냈다. 삼양라면도 당첨자 발표와 함께 “100만 원을 타실 수 있는 행운의 기회는 또 있습니다”라며 맞불을 놨다.
라면 시장뿐만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맥주 시장에서도 라이벌이 세게 붙었다. 1959년 5월 9일 자 부산일보 1면에 크라운맥주는 “크라운맥주 애음가에게 드리는 3000만 환(300만 원) 복금”이라며 크라운 복권 행사를 벌였다. “왕관 마개 표면에 은박지가 붙어 있는 것이 당첨복권” “병마다 상자마다 행운의 크라운 복권”이라며 소비자를 유혹했다. 이에 질세라 OB맥주도 경품 전쟁에 뛰어들었다. 5월 17일 자 부산일보 1면에 “OB맥주를 애용하시는 여러분에게 우리도 드리는 3중의 행운”이란 광고를 냈다. 4000만 환을 내걸고 “병에도, 상자에도, 업주에게도 당첨 확률이 높은” OB 행운권을 내놨다. 경쟁업체를 따라한다는 손가락질을 감수하고라도 ‘우리도 드리는’ 이라는 문구를 강조해 어떡하든 소비자의 눈길을 끌려고 애를 썼다.
크라운과 OB의 광고전은 예서 멈추지 않았디. 1993년 소백산맥 지하 150m에서 끌어온 100% 천연암반수를 내세운 하이트맥주가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라는 광고를 내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크라운 하이트맥주와 동양맥주의 천연암반수 광고 논쟁이 벌어졌고, 그 뒤에도 기 싸움은 계속됐다.
롯데와 해태의 껌 전쟁도 만만찮았다. 1968년 2월 7일 자 부산일보 4면에 롯데제과는 “그린껌·스피아민트껌 신발매 기념 대 프레젠트 1000만 원 대경품부”라는 광고를 냈다. 신형 코로나 승용차 5대를 내건 파격적인 경품전이었다. 해태제과도 가만있지 않았다. 1968년 3월 19일 해태제과는 “공장 증축기념 해태제과의 대선물 경품 사상 최대의 1500만 원 경품부 대판매” 광고로 응수했다. 특등 6명에겐 주택자금 100만 원씩 주겠다는 경품 광고였다. 이후 해태제과는 “초가집에 전세 들고 삯바느질로 사는 가정주부가 세 번째 100만 원에 당첨됐다” “당신도 100만 원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따위의 광고를 이어가며 6회에 걸친 수상자 소개 광고를 잇달아 냈다. 롯데제과는 1972년 3월 30일에도 “롯데 대형껌으로 피아트 10대” 등의 광고를 내며 몇 년에 걸쳐 해태와 경품 광고전을 펼쳤다.
조미료 시장을 둘러싼 미원과 미풍의 경쟁은 묘하게 덩치가 뒤바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1963년 미풍 브랜드로 조미료 시장에 진출한 제일제당은 조미료 시장 선두주자인 미원을 상대로 공격적인 광고전을 펼쳤다. 미풍은 1970년 2월 2일 조미료 빈 봉지 5장을 모아오면 선착순 10만 명에게 스웨터나 내의를 경품으로 주는 파격적인 행사를 비롯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상 공세를 펼쳤다. 미원도 이에 맞서 바로 그다음 날 “새 포장 발매 기념”이란 명분으로 미원 빈 봉지 5장을 모아오면 1만 명에게 금반지 하나씩 주겠노라고 호기를 부렸다. 한 달 뒤 이번엔 일본제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를 둘러싼 광고전이 펼쳐졌다. 1970년 3월 12일 자 부산일보 7면에 미풍은 코미디언 구봉서를 내세워 “미풍으로 아지노모도를 맛보세요”라며 일본 아지노모도와의 기술합작을 강조하는 광고를 실었다. 미원은 1970년 4월 4일 자 부산일보 7면에 “미원은 과장된 허위선전은 않습니다. 일본 조미료의 상표를 업었다고 해서 맛이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라고 반박하는 광고를 실었다. 제일제당의 모기업인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훗날 자서전에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 자식, 그리고 미원”이라고 할 정도로 미원과 미풍의 조미료 전쟁은 치열했다.
시장에서 1등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맞수 기업의 경쟁은 끊임없이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다만 염치없이 경쟁업체를 따라하거나 살벌한 비방전을 불사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출혈 전쟁을 벌이다 보면 맞수 기업 모두 패배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