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제도 피로’로부터의 탈출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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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이 해외공관에서 유출된 사건과 관련해 연일 정치권의 뜨거운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새로 임명된 외교부 차관은 이 사태와 관련해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연이어 벌어진 외교부 내의 크고 작은 사고 등이 ‘제도 피로’에 직면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자평을 내놨다.

개인에게 전가되는 사회의 피로

격화되는 대립·갈등에 국민 탈진

개인이 더 많은 여유 가질 수 있게

피로를 사회로 돌리는 개혁 필요

사회를 보다 유연하게 만들어

제도 피로 극복하는 창조적 포용을

‘제도 피로(system fatigue)’라는 표현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일본의 전 총리인 고이즈미가 2000년대 초반 ‘규제만능주의’에 빠진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업 자유화 정책을 펼치면서 그 원인을 ‘제도 피로 현상’으로 지목한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그가 펼쳤던 정책의 핵심은 제도와 규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심사하여 모든 비시장적 요소를 철폐하고 민간에게 활력을 되찾아 주는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었다. 그의 꾸준한 규제 개혁 노력 덕분에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데 성공했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즈음 이러한 규제 혁신을 수용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제도 피로는 단지 규제만능주의에서 유래한 것일까. <피로사회>의 저자로 ‘피로’ 철학자라 할 수 있는 한병철 교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신경증적인 피로사회’라고 보면서 그 원인으로 이질성의 소멸, 과잉 섭취, 성과의 강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질성의 소멸이란 이전 근대사회 속에서는 타자와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시대가 변화하여 우리 주변의 이질성을 극복이 아닌 흡수의 방향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이를 완전히 소화해 내지 못해 일종의 소화불량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잉 섭취는 현대사회가 필요 이상의 자극, 정보, 충동이 넘쳐나 버퍼링(buffering)이 발생하고 결국 시스템 자체가 작동을 멈추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개인에 대하여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이 요구되고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가 주어지는 바람에 개인은 결국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는 자기 착취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주변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체증과 답답함이 결국 자포자기로 이어지는 모습을 접하면서 우리 속에 누적된 제도 피로가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을 보게 된다. 국가적으로도 제도 피로가 단지 외교부에 한정된 것일까.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도 이제 신선함보다는 국가 조직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균열과 파열음으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국민을 위한 궁극적인 제도 개혁은 ‘권력의 감소’, ‘국민에게로의 권력 환수’가 아닐까. 선거제도 개혁 또한 보다 다양한 민의의 대변, 각 직역 전문가의 국회 입성, 입법부로서의 능력 강화를 통한 창조적이고 선제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면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정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그럼에도 우린 아직도 극복되어야 할 근대사회의 이항대립이 극대화되는 모습 속에서 탈진하고 있는 국민을 보게 된다.

어찌하면 피로 누적의 사회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재밌는 것은 ‘지치다’는 말이 단지 피곤하고 탈진되는 상황만에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말의 ‘지치다’는 얼음 위를 미끄러져 달리는 모습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아마도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얼음을 ‘지치게’ 하여 앞으로 나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제도 피로가 개인에게 전가되어 사회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역발상으로 지친 개인의 피로를 제도와 사회로 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노동시간의 감소, 욕망의 축소, 특정한 영역에 대한 관심의 분산 등은 제도 피로를 극복하고 사회를 보다 유연하고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 개혁을 통해 개인이 좀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진다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침 뉴스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배’를 일본 오즈모 우승 선수에게 수여하는 장면을 보았다. 스모 시합장에서 직접 상을 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이라고 해서 주목을 받았는데, 난 오히려 그 시합장에 앉아서 열광하던 관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학생부터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까지 선수들의 한 동작 한 동작에 감탄하며 박수 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 시간을 자신들의 전통에 쏟고 있었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정치와 외교, 제도와 처벌 같은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퇴근 후와 주말의 취미와 기호로 전환될 때, 그리고 그러한 ‘고독’이 자신만을 위해 쓰이지 않고 공동체와 역사를 위해 사용될 때, 그리하여 국민들의 피로가 모두 건전하게 역사화되고 제도화될 때 비로소 우린 제도 피로를 넘어 창조적 포용의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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