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뚫고 나온 강렬한 단색의 저항
미술 사조의 새 흐름은 기존의 기법과 시각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다. 천상의 세계를 그린 그림을 현실의 표현으로 가져온 쿠르베가 그랬고, 완벽한 재현의 불능을 감지해 화폭만의 세상을 강조한 세잔도 그렇게 전복(顚覆)의 길을 걸었다.
단색화의 대가 하종현 화백도 화면의 앞뒤를 구분하는 기성 형식을 타파해 나가는 작가이다. 그는 마대 자루인 캔버스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이란 독특한 작업방식을 구축했다. 또 밀려 나온 물감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행위 역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단색화의 대가, 하종현 화백
부산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
독특한 ‘배압법’ 적용 15점 전시
국제갤러리 부산점(부산 수영구 망미동)은 이러한 작품 세계를 담은 ‘하종현 개인전’으로 7월 28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하 작가의 이번 개인전에서는 근래 새롭게 도입한 다홍색과 적색, 청색을 담은 대작 ‘Conjunction(접합)’ 시리즈를 비롯해 모두 15점이 선보인다.
전시작 중 ‘Conjunction 18-12’는 같은 다홍색 속에서도 색조 차이를 드러내는 하 작가의 대표작이다. 뒷면에서 다홍색 유화물감을 밀어낸 다음 마포 앞면의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기를 피워 그을음을 씌우는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을음은 횃불처럼 나무 막대기에 천을 두르고 휘발유를 부은 다음 불을 붙여서 얻는다. 이후 작가는 연기에 그을린 물감을 도구로 밀어내면서, 우연히 나타나는 묘한 색채에 의미를 부여한다. 선명한 다홍색은 단청과 한국 전통악기의 화려한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검정이 주류를 이루는 작품 ‘Conjunction 15-169’도 비슷한 작업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 작품의 특징은 앞으로 밀어낸 유화물감에서 다시 옆면으로 번진 기름 형상이다. 작가가 의도한 검정과 자연이 가져다준 기름의 ‘번짐’이 필연과 우연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
‘Conjunction 18-52’는 최근 작품. 뒷면에서 밀어낸 흰 물감에 검정 그을림을 덮은 후 나이프와 철사로 끍어내면서 완성한 단색화이다. 회색과 흰색이 어울리며 드러내는 형상이 참으로 오묘하다. ‘Conjunction 18-41’ 작품의 색채는 단순히 어둡거나 검은 톤이 아니다. 오랫동안 비를 맞은 기와가 세월에 퇴색한 듯한 자연적인 색조라고 할 수 있다.
하 작가는 1935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했다. 지금도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그는 여전히 새로운 회화의 방법론을 탐구하면서 각종 해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하 작가는 “그을음을 입힌 물감을 밀어낼 때 드러나는 색채와 유화물감에서 번지는 기름 모양새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종현 개인전=7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051-758-2239.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