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산 행진곡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에서 우리 과거가 겹쳐 보인다.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고, 곤봉으로 내리치는 과잉 진압에 탄압받던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홍콩 시민들이 한국어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중국어로 번역한 ‘우산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에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2017년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100만 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부른 노래로 소개되었을 때 홍콩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2014년 ‘행정수반 직선제’를 요구하며 민주화시위를 벌인 지 5년 만에 홍콩 도심에 우산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당시 시위는 시위대가 물대포와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사용해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송환법은 중국과 대만 등 현재 범죄인 인도 조약 미체결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이 통과되면 중국에 대한 일상적 비판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표현의 자유를 해칠 것을 우려한다. 지난해 ‘홍콩 독립’을 주장한 홍콩민족당을 강제 해산하고, 관련 토론회를 연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지국장의 비자 연장을 거부해 사실상 추방한 사례를 보면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정치와 별개로 홍콩 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시위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홍콩의 평균 집값은 14억 원으로 전 세계 도시 중 가장 높지만, 최저임금은 시간당 37.5홍콩달러(약 5600원)에 불과하다. 젊은 층 대부분은 주택 구입을 사실상 포기했고,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청년들 때문에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시위대에 청년이 많았던 이유를 우리도 명심해야 한다.
SNS를 중심으로 홍콩 시민들과 연대하자는 움직임이 확산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홍콩의 민주화에 연대하기를 바라는 글에는 2만 4000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홍콩에서는 한국의 사회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토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시위 문화가 홍콩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홍콩의 시위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을 연기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고공농성을 벌이던 시민이 추락해 숨지는 사건으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가 세계인이 지켜보는 이번 사태를 더 이상의 유혈 충돌 없이 잘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박종호 논설위원 nleader@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