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광고풍속도] ㉖ 에필로그
“신문광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다이알비누를 만들던 동산유지는 1974년 4월 9일 자 부산일보 8면에 “이것만은 동일합니다”라는 카피로 비누와 신문의 공통점을 재치있게 광고했다. “신문과 비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원료와 제조 과정이 다릅니다. 모양도 용도도 다릅니다. 그러나 꼭 하나, 아침저녁 당신이 반겨 맞이하는 것, 꼭 필요한 것, 이것만은 동일합니다”라는 문구를 실었다.
매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즈음해 한국신문협회가 신문광고의 필요성을 알리는 광고를 싣곤 했는데, 그 맥락이 동산유지 광고와 다르지 않다. 1974년 4월 9일 자 부산일보 5면에 한국신문협회가 “일상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신문광고”라는 제목으로 낸 광고에서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어느 곳이나 신문이 존재하고, 신문광고는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주식(主食)과 같은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신문광고의 변천사는 시대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영화 광고의 등장과 퇴장이 그러하다. 1946년 9월 10일 자 창간호 4면에 실린 ‘청색의 제복’ 영화 광고가 부산일보 지면에서 확인되는 첫 광고다. 동구 수정동 대화관과 초량 대생좌가 추석 개봉작으로 내놓은 미국 유니버셜사의 작품이었다. “가난한 여대생이 출세할 때까지의 명랑하고 눈물겨운 사연을 담았다”며 감성을 자극했다. 국제영화공사 남선출장소는 ‘청색의 제복’ 외에도 ‘장미의 천사’ ‘진주목걸이’ ‘로미오와 줄리엣’ ‘모히칸족의 최후’ 등 10편의 외화를 9월 10일부터 부산서 개봉한다는 광고를 바로 옆에 실었다.
영화 광고는 이후 50여 년간 단골 신문광고였다. 1962년 9월 12일 자 부산일보 8면에 실린 영화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광고처럼 과장되거나 격정적인 문구로 일관했다. “역사적인 유료시사회 개최에 즈음(際)하여” “주연배우 인사차 부산방문” “매진! 매진! 시사권 발매중” “장엄웅대한 스케일!” 따위의 문구로 시선을 끌었다. 유명배우들이 자청해서 인터뷰를 하려고 신문사를 찾던, 신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절의 풍경이다. 신문광고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본격적인 멀티플렉스(Multiplex·복합영화상영관) 시대로 접어들면서 2004년 이후 영화 광고는 신문에서 자취를 감췄다.
약 광고는 예나 지금이나 신문광고에서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다. 부산일보에서 확인되는 첫 약 광고는 1948년 2월 19일 자 1면에 난 활인소본포 영화약국의 광고다. “임질과 매독, 위장병에 백발백중인 선약(仙藥)이 있다”며 “십년 만성도 완전 근치(根治)한다”고 장담했다. 그 뒤에 나오는 약 광고도 어김없이 병을 근본부터 치료한다는 약속들을 내놨고, 만병통치를 자임한 약들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 광고는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갈수록 신문광고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3년 9월 26일 자 부산일보 7면에 실린 “중앙시범아파트 분양” 광고처럼 시작은 미미하고 소박했다. 미공보원 서측에 위치한 부산의 중심가라는 입지를 강조했다. 온돌 2층 방에 주방과 장독대, 전화, 수도, 변소 등 기타 시설이 완비됐다고 광고했다. 변변한 화장실조차 없고 전화도 귀하던 시절이라 충분히 통했던 광고 전략이다. 1976년 3월 9일 자 8면 “남천 삼익맨션 3월 12일 분양” 광고를 기점으로 아파트 분양 광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이방(異邦) 지역, 서구 스타일, 본격 맨션”이라는 문구와 함께 1200세대 대단지 아파트 분양 사실을 알렸다. 건설업체 11개사가 공동명의로 해운대 신시가지 아파트 분양 소식을 전한 1993년 12월 20일 자 부산일보 16면처럼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전면광고는 끊이지 않았다. 1998년 3월 13일 자 용호동 LG메트로시티 분양 광고는 4개 면에 걸쳐서 특징을 꼭 집어 홍보했다는 점에서 기존 광고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 바닷가에 접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부산 사람 중에 200만 명은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산다”는 도발적인 문구로 ‘21세기 해양특별구 LG메트로시티’를 강조한 것을 비롯해 교통·교육·문화특별구의 차별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광고 전략으로 눈길을 끌었다. 2000년 이후 몇년 동안은 아파트 분양 광고의 황금기였다. 2000년 3월 8일 자 부산일보는 4개 면에 걸쳐 화명신시가지 부동산 특집을 실은 데 이어 11일에도 4개 면에 걸쳐 해운대 롯데캐슬 광고를 실었다.
부산이란 도시의 형성사도 신문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68년 5월 17일 자 부산일보 1면엔 “전차 대신 대형버스가 등장합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그해 5월 19일 자정을 기해 전차 운행 중단을 알리는 부산시의 광고였다. “1909년 6월 부산진~온천장 간 첫선을 보였던 부산의 전차가 시대의 조류에 밀려 개화기의 유물로 낙후하고 말았다”며 “승·하차 시 차도를 횡단해야 하는 위험, 도로포장의 막심한 파손, 운행 시 굉음과 진동, 느린 속력으로 교통 소통 저해 등 현대도시의 암적인 존재가 됐다”고 운행 중단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전차가 철거되고 나면 ‘스피디’한 대형버스 102대로 하루 17만 5000여 명을 날라 54대로 하루 14만 명을 수송하던 전차보다 무려 3만 5000명이나 수송 인원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으로 트램이 부각하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1964년 8월 7일 자 부산일보 3면엔 “송도 바다를 공중에서 즐기는 케이블카”라는 광고가 실렸다. “부산 송도에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 우주시대의 휴일은 송도 케이블카로”라는 카피와 함께 특히 “젊은 아베크는 더 좋아요”라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1967년 4월 4일 자 부산일보 7면엔 “동래 케이블카 개통” 광고도 실렸다. “부산 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신축”(1967년 8월 31일 자 8면), “도시고속도로 개통 및 부두도로 확장공사 준공”(1980년 10월 7일 자 8면), “구덕터널 및 접속도로 개통”(1984년 8월 11일 자 1면), “동서고가로 전 구간 개통”(1994년 12월 28일 자 3면)을 비롯한 부산의 SOC 사업과 “소비자의 전당 부산진시장 연내 준공”(1969년 7월 31일 자 6면) “번영의 70년대를 향한 세계 수준의 부산데파트 개장”(1969년 10월 23일 자 4면) 등 부산의 상권 형성사도 신문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간 광고도 종종 발견된다. 1973년 10월 18일 자 부산일보 8면에 어린이 종합감기약 코코시럽을 내놓은 삼아약품의 기업 이미지 광고가 실렸다. 광고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뜻밖에도 ‘주 5일 근무제’였다. ‘제약정도(製藥正道)’를 표방한 삼아약품은 “국내 최초로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함으로써 충분한 휴식으로 축적된 건강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우수의약품을 생산 공급함으로써 보다 나은 인류복지와 제약 정신을 더 굳게 다져갈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 이후 삼아약품의 1인당 매출액은 15%, 1인당 생산량은 32% 늘어난 반면 작업손실률은 11%에서 4%로 낮아졌다는 기사가 뒤따랐다. 출근율도 94%에서 99.4%로 높아졌고, 지각·조퇴율은 더 낮아졌다고 한다.
삼아약품의 선도적인 주 5일제 도입 이후 30년가량 지난 2002년 10월 15일 자 부산일보 3면에 경제단체들이 낸 “주 5일 근무제, 이대로는 안 됩니다”라는 광고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하다. “2002년 10월 8일 주 5일 근무제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도 무시한 것으로 민간 경제계는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내용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900달러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3만 3000달러의 일본 휴일 수보다 7일이나 더 많다”며 “정부 입법안에 따르면 휴일 수가 136~146일로 늘어나 선진국 평균 126.8일보다 높고 세계 최고 수준인 프랑스 145일보다 많아지게 된다”는 주장도 폈다. “놀아도 임금을 받으니 많이 노는 게 남는 거다”라며 노동자를 비아냥거리는 삽화와 함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지키는 주 5일 근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인건비가 상승하면 많은 기업이 삶의 터전을 제3 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익숙한 주장도 되풀이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둘러싼 요즘의 논란과 판박이다. 이 광고는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동명의로 냈다.
그간 연재한 [이상헌의 광고풍속도]는 1946년 이후 부산일보에 실린 개별적인 광고를 일일이 수집해 맥락에 맞게 재배치한 결과물이다. 현재의 전지적 관점으로 과거를 읽어내다 보니 참과 거짓의 경계가 조금은 더 명료해졌다. 광고주의 일방적인 주장과 정보 전달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신문광고가 기록한 역사 덕분이다. “신문광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선뜻 동의하기 힘든 주장의 근거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신문의 기록성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한국신문협회가 1980년 4월 7일 자 부산일보 1면에 낸 “책임 있는 신문광고”라는 광고 같은 거다.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사람도 그것을 문서화하라면 짐짓 머뭇거리게 된다”며 “일단 기록에 남는다면 언젠가는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고 활자화된 기록의 진실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문이 뭇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기록성과 보존성 때문”이라며 “영구히 보존되는 신문광고는 그 내용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고 신문광고의 책임성을 역설했다. 한국신문협회가 1978년 4월 6일 자 부산일보 1면에 실은 “신뢰받는 신문광고”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문광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한 번 인쇄된 활자는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신문 독자는 어수룩한 말을 덮어놓고 믿어버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신문광고는 영구보존됩니다. 진실만이 영원히 살아남습니다”. 진실은 언젠가는 그 실체를 드러낸다. 다만 행간을 읽는 깨어 있는 독자들이 있다는 전제 아래서다. -끝- 이상헌 논설위원 ttong@busan.com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