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2011년 2월 추운 겨울 아침, 3만 8000여 명에 이르는 서민의 6268억 원에 달하는 재산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벌써 수년이 흘러 부산 시민의 기억 속에 가물가물해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120여 개에 달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4조 원가량을 부당 대출한 것으로 밝혀졌고, 피해자들은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산관재인인 예금보험공사(예보)는 부산저축은행과 법인들의 사업 대부분을 정리해 매각금 일부를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조치를 취했으나 아직도 원금 일부조차 상환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많은 상태다. 이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백방으로 간절하게 호소했고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으나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로

3만 8000여 명 6268억 원 피해

마지막 기대 캄보디아 투자사업

항소심 패소로 채권 회수 쉽지 않아

정부, 사법 공조·외교적 노력 필요

부산 시민도 관심과 응원 보내길

최근 캄보디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도시 사업, 이른바 ‘캄코시티’ 사업이 피해자들의 숨통을 틔워 줄 마지막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 사업은 2005년 8월 부산저축은행이 피해자들의 예금 2369억 원을 현지 시행사에 사업투자 형식으로 대출해 주며 시작된 것이다. 당시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이었던 김모 씨가 자본금이 11억 원에 불과했던 이모 씨의 회사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사업약정서를 체결해 주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부당대출을 한 김 씨는 횡령·배임 등의 혐의에 대하여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인데, 정작 그와 공모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씨는 최근 남몰래 캄보디아 현지의 사업 부지를 매각했다는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이 씨는 몇 년 전 예보를 상대로 부산저축은행의 파산으로 예보의 몫이 된 위 사업의 지분 60%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캄보디아 현지에서 제기했고, 관할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은 뒤 열린 재판에서 캄보디아 법원은 뜻밖에도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예보는 즉각 항소했지만 그 이후 상고, 재상고까지 이르는 지난한 소송전을 치르고 있다. 그 소송은 피해자 구제자금으로 쓸 수 있는 채권 6500억 원이 걸린 절체절명의 재판이다. 하지만 최근에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예보가 패소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기간 잊히다시피 한 사건을 피해자들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 여론을 환기시켰고,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을 접한 부산지역 국회의원도 3만 8000명에 이르는 서민의 피와 눈물이 어린 돈이니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적극 돕기 위해 현지 재판에 참관하기도 하였다. 예보 사장도, 금융위원장도 이 문제의 중대성을 직·간접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캄보디아 정부에 알리고 대책을 요청했다. 앞으로 법적으로 상고의 기회가 있긴 하나 조속한 채권 회수는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총력을 이 씨의 신병 확보에 쏟아야 할 상황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업무상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씨가 인터폴의 적색수배자로 지정된 만큼 대검찰청 해외불법재산환수 합동조사단을 중심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캄보디아 수사기관과 협력하여 이 씨를 국내로 송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수단이 된 것이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훈센 총리와 한-캄보디아 간 공조수사를 위한 ‘형사사법공조조약’의 문안을 타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약의 실제적인 체결과 발효 이전이라도 ‘실질적’인 수사 협조와 ‘비공식적’ 수사 공조는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전에도 캄보디아 투자를 이용해 사기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피해자들의 진정서 접수 후 캄보디아로 도주했는데, 법무부에서는 캄보디아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고 이에 응답해 현지 경찰이 범인을 검거한 후 국내로 송환한 경우도 있었음을 참고할 수 있겠다. 더구나 최근 세계검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부산고검장 역시 협회를 명실상부한 형사사법 공조 기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만큼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되기 전이라도 캄보디아 사법당국과 협력하여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의 생명 같은 재산을 앗아간 희대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예보나 금융위원회의 노력, 지역 국회의원의 지원, 부산고검장의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 캄보디아 대사를 비롯한 외교부, 법무부와 검찰, 나아가 부산시를 넘어선 범정부적인 기구의 출범이 필요한 이유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부산 시민의 열렬한 응원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야 말로 우리 가족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애정이 아닐까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