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쓰레기 천국 민락수변공원, 올여름은 그냥 지켜본다?
/이우영 사회부
가로등이 꺼지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둠이 이내 깔려도 청춘들은 문제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휴대전화 플래시에 소주병이나 페트병을 겹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는 발광 스피커나 캠핑용 조명을 켠 채 술잔을 부딪는 시민들도 있었다. 요즘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서 자정 이후면 연출되는 풍경이다.
가로등이 꺼지는 이유는 수영구청이 내놓은 ‘특단의 대책’ 때문이다. 여름철 쓰레기양을 줄이기 위해 지난 1일부터 자정에 공원의 모든 가로등을 끄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의 귀가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라지만, 박수와 환호에서 느낄 수 있듯 큰 효과는 없는 실정이다. 자정 이후에 자리를 뜬 시민들을 만나봐도 아무도 ‘조명이 꺼져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벤트가 있는 줄 알고 기다리다 일어났다는 대답도 돌아왔다.
그럼에도 수영구청은 이 ‘어설픈 제재’의 효과를 이달 말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내부 의견이 나와도 안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흐린 날씨의 영향이 있었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오히려 쓰레기가 조금은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장을 지켜보면 가로등이 꺼진 이후에도 공원을 찾는 시민은 줄을 잇는다. 밤새 술판이 이어진 뒤 공원의 아침은 어떠한가. 여전히 널브러진 돗자리와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해 ‘쓰레기 천국’이라는 오명에 적합하다. 이달 말에 새로운 대책을 내놓고, 시행에 들어가면 올여름은 사실상 끝난다.
이달 말이 아닌 지금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 공원 내 음주 금지 등 진정한 특단의 대책을 시행할 게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버리게 유도할 대책부터 선보일 필요가 있다. 타인의 좋은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넛지 효과’를 떠올려보자. 한 스포츠 브랜드는 농구 골대 모양의 쓰레기통을 설치해 쓰레기 수거율을 높였다. 반면 민락수변공원에는 병, 플라스틱 등을 구별해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조차 없다. 낡은 쓰레기 포대 앞에서 한 시민은 쓰레기를 분리하다가 이내 포기하기도 했다. 어설픈 제재는 해답이 아니다. 시민들의 바른 선택을 이끌 수 있도록 공원 곳곳을 바꿔 나갈 대책부터 내놓아야 할 때다. 무작정 기다리기엔 여름이 그리 길지 않다. verdad@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