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에 피는 ‘여름 꽃’] 연꽃, 내 마음에도 피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피지만 맑고 깨끗하다. 둥글고 원만한 모양에 색깔도 화려하지 않은 파스텔톤이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7월, 뜨거운 햇빛 속에 환하게 피어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연꽃 이야기다. 마른 장마에 지치고,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분한 마음을 달래려 연꽃을 찾아 나섰다. 연꽃은 7~8월에 피는 여름 꽃이다. 피고 지기를 달리 하므로 비교적 오랜 기간 꽃을 볼 수 있다. 연꽃이 피면 물비린내와 개흙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연꽃이 어느새 마음 안에 들어와 앉은 느낌이다.
성산산성 발굴 중 찾은 씨앗 3알
700년 전 ‘아라홍련’ 발화 성공
토종의 ‘법수홍련’ 강한 향 특징
함안 연꽃테마파크서 볼 수 있어
한달간만 개방 울산 회야댐 습지
홍련·백련·부들·갈대 등 장관
250년 전 양반촌 석천마을 유명
서부경남 휴식처 진주 강주연못
오전에 가면 이슬 맺힌 연꽃 구경
함안, 700년 전 아라홍련 향기 그윽
경남 함안은 7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꽃을 피워낸 아라홍련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9년 5월, 아라가야 시대에 축조된 함안 성산산성 발굴작업 중 옛 연못 퇴적층에서 연 씨앗 3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감정 결과 이 씨앗은 650~760년 전 고려시대의 것으로 확인됐고, 함안박물관에서 씨앗을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 1년 후 붉은 빛이 감도는 연꽃이 꽃을 피웠고, 함안의 옛 지명을 따서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남해고속도로 함안나들목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함안 연꽃테마파크에는 아라홍련을 비롯해 토종연꽃인 법수홍련, 가람백련, 수련, 가시연꽃 등 다양한 연꽃들을 볼 수 있다. 11만㎡의 생태공원 안에 들어서면 은은한 연꽃 향기가 방문객들을 반긴다. 연잎차를 한 모금 머금듯이 온몸을 감싸 도는 향기가 마치 복숭아 향인 듯, 꽃 향인 듯 그윽하다. 무더운 날씨와 소소한 근심들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진다.
이곳의 연꽃은 홍련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법수면 옥수늪에서 자생하는 토종연꽃인 ‘법수홍련’이 넓은 면적에 심어져 있다. 법수홍련은 경주 안압지 연과 유전자가 동일한 신라시대 연으로 은은한 연분홍색 꽃잎과 특유의 강한 향기를 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라홍련은 현대의 연꽃에 비해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어서 한눈에 구분된다. 꽃잎 색깔도 아랫부분은 하얀색, 가운데 부분은 선홍색, 끝부분은 붉은색으로 조금씩 달라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안내문에는 고려시대의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의 형태와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이름을 딴 가람백련은 홍련보다 늦은 7월 하순께 개화하는 품종으로 지금은 줄기 속에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낸 꽃망울들을 볼 수 있다.
함안 연꽃테마파크에는 이밖에 가시연꽃과 수련도 많이 심어져 있다. 입구 쪽에 자리한 가시연꽃 재배지에는 가시가 달린 직경 1~2m의 잎이 연못을 완전히 덮은 가운데 밝은 보라색의 꽃잎이 군데군데 꽃필 준비를 하고 있다.
수련은 다른 연꽃들과 달리 잎이 물 위에 떠 있고, 꽃 색깔은 흰색이나 노란색이다. 꽃은 낮에 피었다가 밤이면 오므라든다. 이 때문에 잠을 잔다는 뜻의 수련(睡蓮)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함안 연꽃테마파크에는 1시간 정도 산책하기 좋은 탐방로를 비롯해 연밭 한가운데의 분수와 정자, 붉고 하얀 연꽃의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등이 조성돼 있다.
햇빛을 피할 곳이 마땅히 없으므로 양산, 모자, 생수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카메라에 멋진 연꽃 사진을 담았다면 함안군에서 개최하는 연꽃 사진 공모전에도 출품해 보자. 지역 제한 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입상자 13명에게는 대상 300만 원 등 시상금도 주어진다.
일 년에 한 달만 울산 회야댐 생태습지
부산에서 자동차로 불과 30여 분, 울산의 회야댐 생태습지는 숨겨진 연꽃 명소다. 울산 시민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보니 연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일 년에 딱 한번, 7월 중순부터 한 달 정도만 일반에 개방한다. 올해 개방 시기는 오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 38일간. 탐방 신청이 몰림에 따라 지난해보다 개방 일수를 일주일 정도 늘렸다.
회야댐 생태습지는 17만 3000여㎡ 규모로 이 가운데 약 5만㎡에 홍련과 백련이 심어져 있다. 나머지 공간에도 부들과 갈대 등이 식재돼 장관을 이룬다.
탐방은 회야정수사업소에서 5m 남짓 떨어진 통천초소에서 시작한다. 평소에는 철망으로 굳게 닫힌 초소지만 탐방 기간동안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각 50명, 하루 100명에게만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울산시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http://water.ulsan.go.kr)에서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탐방로는 통천 초소에서 생태습지까지 왕복 4㎞를 오가는 코스다. 안전요원과 생태해설사의 동행 아래 나무와 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논이 습지로 변한 독특한 자연환경과 옛 통천마을의 흔적, 수질정화를 위해 조성된 생태습지와 활짝 피어난 연꽃 등을 볼 수 있다. 생태습지로 가는 길에는 옛 통천마을의 우물, 서당으로 활용됐던 자암서원 등 이곳이 댐으로 바뀌기 전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대숲 울창한 대밭골을 지나면 이내 습지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건너편 노방산을 감싸고 도는 에스(S)자 형 물돌이 형상이 인상적이다. 입구 쪽 능선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광터들 습지부터 노방들 1차·2차 습지까지 회야댐 생태습지가 한눈에 담긴다.
생태습지에는 중간 중간 사잇길을 만들어 놓아 연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개화가 늦은 편이지만 드넓은 습지에서 연꽃 몽우리가 하나 둘씩 피어나는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다.
회야댐 생태습지를 방문했다면 돌아오는 길에 웅촌면 석천마을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울산의 대표적인 양반촌 가운데 한곳으로 250년 전에 세워진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이 남아있다. 또 노거수인 곰솔과 보호수로 지정된 무궁화가 인상적인 석계서원은 독특한 건축미로 또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서부경남의 숨은 명소, 진주 강주연못
화려하지도 흐드러지게 피는 것도 아닌 연꽃의 고결함을 느끼기엔 경남 진주의 강주연못이 제격이다.
총면적 1만 8000㎡의 자그마한 연못이지만 연꽃과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 데다, 이팝나무 등 고목들이 연못을 감싸고 있어 진주, 사천 등 서부경남 주민들의 여름 휴식지로 즐겨찾는 숨은 명소다.
강주는 진주의 옛 이름이다. 연못 주변으로는 900m 길이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연못 안으로도 생태 환경을 관찰할 수 있는 덱이 설치돼 있어 어르신, 아이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특히 홍련, 수련 등 활짝 핀 연꽃들 사이로 논병아리, 물닭 등 새들이 먹이를 찾아 자맥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 어린 자녀들의 생태학습장으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남해고속도 사천 나들목을 나와서 진주 방면으로 500m 정도 가면 오른편에 강주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이어 200m 거리에 강주연못이 있다. 연꽃은 오전 6시부터 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니 연잎에 이슬이 맺힌 멋진 연꽃을 볼려면 일찍 움직이는 것을 권한다.
더 넓고 화려한 연꽃 명소를 찾는다면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 최대 연꽃 명소인 전남 무안군 회산 백련지와 부여 궁남지, 전주 덕진호를 찾는 것도 좋다.
무안 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연꽃 단지로 백련지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하얀색의 연꽃이 대부분이다. 부여 궁남지는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으로 천만 송이 연꽃이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