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구이] 숯불 위에서 만난 돼지와 닭, 혀가 춤춘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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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의 의도가 잘 표현되고 손님의 기대에도 잘 부합되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다이닝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깊이 있는 우아한 음식을 추구하고, 손님도 그런 걸 원할 거다. 시락국집에선 예스러운 구수한 음식이 적합하다. 식당의 성격에 따라 추구하는 음식도 손님의 기대하는 맛도 다 다른 법이다.

꽃목살·늑간살 부드러운 이베리코

느끼함 잡는 갈치젓과 환상 궁합

양념 숙성된 닭목살과 허벅지살

기름기 쏙 빠지고 숯불 향 가득

“익숙한 먹거리지만 메뉴 조합 독특

先 돼지고기 後 닭고기 맛깔스러워”

‘미식가의 구이’는 심오하고 깊이 있는 맛이라기보다 즉각적이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맛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흔히 말하는 회식하기에 좋은 식당으로, 술의 맛을 극대화해주는 요리로 손님의 기대에 부응한다고 할 수 있다. 미식가의 구이 2호점 김해영 지점장은 “미식가의 구이 1호점을 열고 곧 손님이 몰리더니 줄까지 쓰게 됐다. 우리도 좀 놀랐다”며 “익숙한 먹거리지만, 음식 조합과 맛에서 차이가 있다고 평가해주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지점장이 가족들과 함께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에 미식가의 구이 1호점 문을 연 게 2017년 말이다. 금세 손님이 몰려 대기 줄이 길어지자, 인근에 2호점도 세웠다. 그게 시작이었다. 반응이 좋다 보니, 분점과 체인점이 계속 늘어나 지금은 부산과 경남 등에서 30여 개의 미식가의 구이가 성업하고 있다.

범천동 지점을 방문했다. 약간 불그스레한 조명 아래의 실내는 깔끔한 고깃집 같기도 하고, 이자카야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지점들도 대부분 선술집과 고깃집이 공존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한다. 메인 메뉴는 이베리코 돼지와 닭구이다. 김 지점장은 “대부분 먼저 이베리코를 먹고 닭으로 넘어간다”며 “담백한 맛을 먼저 본 뒤 양념이 된 음식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화로에 숯불이 들어오고, 이베리코 꽃목살과 늑간살이 석쇠 철망에 놓인다. 술안주로 먹는 돼지고기에 그리 큰 기대를 안 했지만, 새삼 이베리코는 이베리코라는 걸 확인한다. 삼겹살과 비교해 질감이 훨씬 부드럽고 맛이 풍성하다. 기본적인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좋지만, 갈치젓갈과 궁합이 좋다.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특히 늑간살의 맛이 인상적이다. 속에 기름을 품고 있다가, 입안에서 즙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있다. 김 지점장은 “늑간살을 좋아하는 손님이 많다. 곱창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더라”고 말했다. 꽤 정확한 표현같다. 확실히 곱창의 느낌이 있다.

오늘은 술과 안주에 취하러 온 게 아니라, 맛을 음미하러 왔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베리코보다 닭 숯불구이에 거는 기대가 더 크다. 이베리코가 비워지고, 철망이 교체되고, 짙은 주황색의 닭갈비와 닭목살이 놓인다. 양념에 숙성된 고기다. 닭갈비는 허벅지살 부위인데, 통째로 나와 큼지막한 것이 먹음직스럽다. 적당히 익으면 잘라 먹는다. 두껍지 않은 닭목살이 펼쳐져 구워진다. 어느새 숯불의 기운을 받은 고기의 빛깔이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한다.

닭갈비는 사실 흔한 음식이다. 일명 철판 닭갈비라고 부르는 요리가 전국 곳곳에 깔려 있다. 넓고 둥근 철판에 닭과 야채, 양념장 등을 넣고 볶은 뒤 밥까지 비벼 먹는 형식이다. 온갖 맛이 철판 위에서 뒤섞이니, 결국 강한 양념과 기름진 질감 위주로 기억되는 음식이다.

철망 위 닭갈비가 적당히 익자, 먹기 좋게 썬 고기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확실히 고기 맛은 철판보다 숯불이 한 수 위다. 철판 닭갈비에 비해 기름기가 빠지고, 숯불 향이 베여 혀가 꽤 만족스럽다. 양념은 닭갈비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고기에 스며드는데, 숯불에서 굽고 나면 강렬하지 않지만 은은한 맛을 풍기며 식감을 자극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약간은 매콤한 편인데, 주문 제작된 타르소스에 찍어 먹기 좋다. 역시 주문 제작된 빨간 소스가 있는데, 보이는 대로 매운맛이다. 화끈한 맛을 원하는 이에겐 추천한다.


닭목살도 인상적인 맛이다. 두껍지 않다 보니, 닭갈비와는 확연히 다른 질감을 제공한다. 더 잘 굽히고 더 쫀득하다. 양념이 더 잘 베여 달콤한 향도 더 강하다. 먹다 보니 닭꼬지를 먹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김 지점장은 “이베리코를 먹은 뒤라서 닭구이가 더 맛깔스러워지는 것 같다”며 “맛도 맛이지만 메뉴 조합이 독특한 게 손님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어느 식당의 맛에 대한 평가는 개별 음식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상에 오른 모든 음식과 식당 서비스 등에 평가의 총합 아니겠는가. 그래서 식당 문을 나설 때의 기억이 좋아야 한다. 보통 술집에선 안주가 술을 마시기 위한 보조수단에만 머물러, 음식에 대한 기억이 남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미식가의 구이를 나설 때는, 술보다 이색적인 메뉴 조합과 숯불 향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랠 갈 듯하다.

▶미식가의 구이/부산 부산진구 범일로142번길 41 등 부산경남 전역/이베리코 꽃목살·늑간살 130g 9000원, 숯불양념 닭갈비 2대·닭목살 및 닭발 150g 9000원 등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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