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블랙 미러’에 더 깊이 빠져 봅시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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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 이원진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는 새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아주 드문 작품이다. 현실 세계과 가상 세계를 묘하게 오가는 이 드라마는 곳곳에 숨겨져있는 코드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평소 ‘블랙 미러’를 즐겨본다면 이 책, 한 번 읽어볼 만하다.

2011년 영국 채널 4에서 처음 방영된 이 시리즈는 이후 넷플릭스가 판권을 샀고 시즌 3, 4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우선 도발적 상상력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은유한다는 점에서 한 편, 한 편이 철학에 가깝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가 영국의 공주를 납치했고, 공주를 살리기 위해서는 영국 총리가 돼지와 수간(獸姦)하는 장면을 생중계해야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가 드라마 한 편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테러리스트가 공개한 영상 속 공주의 절규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점점 총리가 실제로 돼지와 수간할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SNS 시대의 광기에 주목한다. 테러범이 유튜브로 협박 영상을 보내자 영국 정부는 언론사에 이 사안을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SNS 시대에 이를 비웃듯,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은 확산되고 결국 레거시 미디어까지 합류해 희대의 뉴스가 된다. 모든 사람이 오후 4시 예정된 총리의 수간 생중계에 집중하는 사이, 테러범은 오후 3시 30분 공주를 풀어줬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대중을 남의 불행을 볼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뜻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결국은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를 이용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키우는 것이 앞으로 더 중요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블랙 미러’를 보면서 놓쳤던 은유와 상징을 저자가 전공한 철학의 힘을 빌려 해석해볼 수 있다. 에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쓴 ‘샌 주니페로’ 편을 불멸과 영생, 죽을 권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점도 흥미롭다. 이원진 지음/우리학교/200쪽/1만 3000원. 조영미 기자 mia3@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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