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대하여' 식민주의·전체주의·위장한 평화주의… 그리고 일본의 책임
책임에 대하여/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한·일 관계가 요즘처럼 험악했던 적도 드물었다.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 배상 판결 등의 여파로 한·일 갈등은 최고조 상태다. 급기야 일본 아베 정권은 ‘화이트 리스트 한국 제외’라는 수출 제재로 경제전쟁을 선포했고, 한국에서는 반일과 극일, ‘노 재팬(NO JAPAN)’의 외침이 뜨겁다.
이 같은 시점에서 일본의 본성과 정체를 밝히고 그 책임을 논파하는 책 〈책임에 대하여〉가 ‘현대 일본의 본성을 묻는 20년의 대화’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부제처럼 이 책은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와 재일 조선인 학자 서경식 교수의 20여 년에 걸친 대화를 세 차례의 대담을 통해 정리해 실었다.
재일 조선인 학자 - 일본인 교수
위안부·미군 기지·후쿠시마 원전…
일본의 본성·정체에 대한 20년 대화
저자들이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위기를 고찰하며 나눈 대화의 일관된 주제는 ‘책임’이었다. 다카하시 교수는 ‘위안부’(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논쟁에서부터 책임론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 왔는데, 그러한 그의 논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와 관련해서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그의 논의는 보수파의 책임 부정론에 대한 비판이며, 많은 일본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책임 회피의 레토릭(수사학)에 대한 예리한 비판으로 평가된다.
서경식 교수는 일본이 조선 식민지배 때와 다를 바 없는 사상과 체제를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역사 수정주의가 발호하고 식민주의 체제가 계속되면서 오히려 증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진정한 독립을 달성하지 못한 채 분단의 질곡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 일본의 가면과 본성을 드러내는 이 책은 한·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인 식민주의와 전체주의, 보편주의로 위장한 평화주의 등 일본의 내재된 본성을 섬세한 논쟁으로 짚어낸다. 현대 일본이 외면하는 대표적인 주제들인 ‘위안부’ 문제, 오키나와 미군 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을 아우르며 현대 일본의 퇴행과 위기를 파헤친다. 일본 식민주의의 본질은 식민지 조선과 오키나와와 같은 타자를 이용해 일본 본토의 안정을 지탱한 것이며, 그 본질을 외면한 결과 원전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마저 백안시하는 현재의 일본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수출 제재 등 경제 보복 조치를 무역 보복이 아니라고 우기는 궤변이야말로 일본의 반복되는 무책임의 표상과 같다고 지적한다.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한승동 옮김/돌베개/320쪽/1만 8000원. 백태현 선임기자 hyun@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