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조선기자재 산업의 위기와 기회
/천정민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선임연구원
‘700살 빙하’ 장례식이 지난 8월 20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있는 오크 화산에서 열렸다. 오크 화산의 빙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014년 사망 선고를 받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기후학자들이 이러한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파리기후협약 역시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체결되었다. 195개 국가가 참가해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시대 이전보다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별 감축량이 제시되었다.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 또한 온실가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온실가스의 상당량이 선박에서 배출되기 때문이다. 국제 해운을 하나의 국가로 취급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본다면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6위에 해당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로 선박 온실가스감축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각국 온실가스규제 전략 수립 한창
각자도생 생존 불가능 시대 맞아
정부·조선소·기업 함께 기술 대처
초격차 산업 진입해 새로운 도약을
구체적으로는 온실가스감축을 위해 선속 제한, 선박 에너지 효율 향상, 대체 연료의 적용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감축에 효과적인 대체 연료 기술을 저탄소, 무탄소, 비화석 연료로 분류하여 논의되고 있다. 적용 가능한 대체 연료에 대한 생애주기평가를 통하여 생산, 이송,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탄소발자국(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할 예정이다. 생애주기평가 결과는 기술개발과 산업계의 대응 방향 수립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 수소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 같이 선박 온실가스감축 기술은 기존 조선기자재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존의 선박 엔진이 사라질 수도 있을뿐더러,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이 선박에 급격히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도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가 2020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친환경 선박법(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은 관공선의 친환경선 의무화, 친환경 및 벙커링 선박 지원의 근거를 마련했다. 산업계의 경우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대체 연료 기술 개발, 선체 효율 개선, 장비 효율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IMO에서 온실가스감축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해지며 온실가스규제는 우리 앞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온실가스규제는 기자재 장착으로 해결되는 황산화물, 평형수규제보다 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새로운 연료가 선박에 적용되며 이에 따른 기자재들의 전환으로 전혀 다른 시스템이 선박에 적용될 것이다. 기존의 기술개발은 조선소별, 기자재 기업별로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온실가스저감기술 개발만큼은 조선, 조선기자재 가치사슬(Value Chain)까지 고려하는 기술개발과 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선박의 시스템 자체가 전환되는 만큼 기존대로 기자재 기업이 홀로 기술개발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과 정책을 기반으로 기자재 기업, 조선소가 함께 온실가스저감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최근 황산화물 규제, 평형수 협약 등 새로운 규제가 출현하며 평형수 처리 장치, 황산화물 저감기술을 보유한 기자재 업체는 조선산업 불황에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호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기자재 기업이 IMO에서 논의되는 사항을 빠르게 파악하고, 미래 시장을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기자재 기업은 99%가 중소기업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고가의 해외 기자재를 국산화하였으며, 기술의 꽃이라고 불리는 LNG 선박용 기자재 국산화를 이루어 내었다.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온실가스규제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조선기자재 산업이 다시금 세계 무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저감기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마련한 온실가스 저감 기술개발 정책에 맞추어 조선·조선기자재 업계가 함께 협업하여 초격차 산업으로의 진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