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조국’ 태풍을 지나면서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대한민국을 두 달여간 뒤흔들고 있는 가장 큰 태풍은 역시 ‘조국’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임할 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열대저기압이 장관 지명과 청문회를 거치면서 중형급으로 성장했다가 장관 임명 후에는 초강력 대형 태풍으로 온 사회 구석구석을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연일 언론으로부터 쏟아지는 뉴스들은 경제·민생, 돼지열병, 한·미 정상회담, 북·미 협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쓸어가 버렸다.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현상들을 암울한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미래의 징후를 열심히 찾아 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 뒤흔든 ‘조국 사태’

혼란 속에도 긍정적 징후 엿보여

기득권층 부정의 민낯 드러내고

양극단 아닌 제3의 목소리 대두

권력기관 개혁 필요성 공감 확산

인권 약자 보호가 진정한 개혁

우선 국론의 분열, 지나친 진영논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고, 국민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 와중에서도 우린 우리 사회의 ‘민낯’, 특히 지도층 일부의 ‘위선’을 명명백백히 보게 되었다. 이처럼 강한 바람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렇게 멋지게 붙어 있을 간판이 날아가고,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것으로 여겼던 전봇대가 쓰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매서운 칼바람이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부정의(不正義)’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국민 모두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국가와 국민 모두 이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되리라 믿는다. 다만 공정이라는 이름의 칼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만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한 수술에 쓰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양 진영이 자신의 논리로만 세상과 민심을 읽을 때 폭풍의 가장자리에서 ‘제3의 목소리’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국민 중에는 ‘무당파’(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라 불리고 있는 세력이 30~40%에 육박하고 있다. 갑자기 외국에서 마라톤에 심취한 한 정치인이 소환되고, 진영 내부에서도 소수자의 고민이 토로되는 것을 보면 새로운 시각, 참신한 비전을 찾는 민심이 이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착수되었는데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 발단이 ‘비정치적(non-political)’ 내부고발자였음에 주목하면서, 누구든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당파(independent)’를 끌어안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수 개월간은 우리 여야 정당들에게 늘어난 부동층의 마음을 헤아리고 경청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의 양극화의 폐쇄성은 결국 다극화의 다양성으로 극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끝으로 여든 야든 이 사태를 거치면서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더욱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는 것도 긍정적인 점이다. 지금은 ‘검찰’이 그 개혁의 대상으로 특정되었지만 이 태풍이 지나고 나면 국가 권력기관 전반에 엄청난 폐허와 상흔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최근 감사원이 채용비리 의혹 등 공무원들의 불법행위 및 부당한 행정 처리와 관련하여 무더기 징계를 요구하고 있고, 언론에 보도되는 특정 부처의 공무원들의 비리와 기강 해이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묵묵히 헌신하는 선량한 공무원, ‘권력’과는 거리가 먼 봉사자로서의 국가기관의 구성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씌우는 일이다.

향후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와 개혁의 손질, 그리고 자체 쇄신의 움직임이 불가피할 것이다. 어쩌면 검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숫자보다는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권력기관’의 잘못된 권력 작용으로 인해 억울함을 당한 평범한 소시민의 숫자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개혁을 주문하는 대통령의 지시와 검찰총장의 즉각적인 응답 속에 공통된 단어는 ‘국민의 인권 존중’이었다. 그 대상이 된 국민 가운데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어서 권력 앞에서 정말 아무 말도 못했던 서민과 소외계층인 인권 약자가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검찰총장이 모든 파견검사를 검찰로 복귀시키고 향후 검찰의 중심을 형사부로 이동시키도록 한 조치나, 법무부 장관이 취약계층 피의자를 위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여야의 정치 다툼이나 보수·진보의 진영논리를 넘어선 진정한 개혁의 시작이요 참된 인권존중의 신호탄이다. 결국 우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태풍도 한낱 바람에 불과했고, 그 뒤엔 파란 하늘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굳게 믿는다.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