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아지 구충제로 암을 치료한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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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라이프팀장

강아지 구충제로 암을 치료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최근 수개월 동안 온라인을 달구고 있는 핫 이슈다.

강아지 구충제 암 특효 온라인 논란

정부, 사람 임상 없다 경고 뒤 방치

인터넷 환자 ‘셀프 임상’ 줄이어 우려

정부 나서 유효성과 유해성 검증해야

미국의 오클라호마에 사는 조 티펜스 씨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하고 2년 뒤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블로그에 올렸다. 올해 초 온라인에 올라온 이 이야기는 암 환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했다.

우선 그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2016년 말기 소세포 폐암을 진단받았고 2017년 1월 암세포가 그의 몸 전체로 전이돼 3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이후 그는 병원에서 1년 정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임상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임상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한 수의사로부터 강아지 구충제 약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 수의사는 4기 뇌암이 걸린 사람이 이 구충제를 복용하고 6주 안에 암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3개월밖에 살날이 없는 그는 강아지 구충제 복용이라는 모험을 결심했다. 의사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후 암을 스캔하는 PET CT를 찍었는데 암세포가 완전히 소멸하고 몸 전체가 깨끗해졌다. 2018년 1월 마지막 스캔을 했는데 종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를 제외하고 병원에서 실시한 임상시험에 참여한 다른 사람은 모두 사망했다. 그는 임상에 사용한 약품 때문이 아니라 펜벤다졸 때문에 나았다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가 퍼진 뒤 그의 블로그에는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완치됐다는 암 환자의 이야기가 수십 건 수집됐다. 수집 건수는 점점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으로 펜벤다졸 ‘셀프 임상’을 올리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다들 말기 암 환자이고, 복용 뒤 증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아직 부작용에 시달린다는 사례는 거의 없다.

폐암을 앓고 있는 개그맨 김철민도 지난달 펜벤다졸 복용 사실을 밝혔다. 이렇듯 셀프 임상이 늘어나면서 펜벤다졸은 약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해외 직구로도 사기 어려운 ‘귀한 약품’이 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말기 암 환자가 검증 안 된 약을 복용하는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게다가 2017년 7월 국내 언론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미국 스탠퍼드대학,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UCSF) 연구팀과 초고성능 컴퓨터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해 구충제 ‘피르비늄(Pyrvinum)’에서 항암 효과를 검증, 실제 간암 환자 조직에서도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고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조 티펜스의 사례 보고, 다른 국내 사례, 국내 언론 보도가 겹쳐지면서 구충제가 암에 특효약처럼 느껴진다. 구충제가 기생충을 굶겨 죽이는 기전이 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일부 전문가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정부는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전문가 상의 없는 약 복용은 심각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다.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과 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사람에겐 안정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며 경고만 내놓고 있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약물인 만큼 정부나 의사, 약사가 나서 펜벤다졸을 복용하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전에도 암에 특효라는 약과 식품이 수없이 많이 나왔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많은 암 환자가 이미 셀프 임상에 들어갔고, 수많은 다른 환자들이 이를 지켜보면서 복용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환자가 불안하고 두렵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 이들의 셀프 임상을 지켜보는 수많은 말기 암 환자들도 불안하고 두렵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사람에 대한 임상이 안 됐으니 쓰지 마라’고 경고만 하고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나서서 펜벤다졸의 유효성과 유해성을 검증해야 한다. 펜벤다졸의 부작용에 따른 피해가 생긴 뒤라면 늦다. kscii@busan.com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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