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은 떠나고, 거점시설엔 거미줄만… 난립하는 ‘도시재생’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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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1번지 부산의 민낯] 1. 기로에 선 부산 도시재생 10년

관광 1번지 된 도시재생 1번지

‘부산 도시재생 1번지’로 꼽히는 감천문화마을은 도시재생 사업 10년 만에 부산의 마추픽추,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애칭이 붙으며 전국적인 명소로 등극했다. 2017년 첫 200만 관광객의 벽을 뚫고 매년 전년 관광객 수를 돌파하는 감천문화마을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하며 부산 관광 명소로서의 자리매김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명세 뒤에는 도시재생의 본질인 주민 상생을 잃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감천문화마을이 대형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관광객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원주민은 해가 다르게 줄어가기 때문이다. 일대 개발과 관광지 상권을 염두에 둔 투자와 주택 매매로 집값이 폭등하는 기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부산 사하구 감내2로 감천문화마을 입구 어귀 한 단독주택. 1985년 지어진 슬레이트 지붕 구조의 이 노후 주택 토지면적당 단가는 평당(3.3㎡) 800만 원에 육박한다. 마을 도시재생 이전인 2008년에는 평당 78만 원이었지만, 마을이 도시재생으로 명성을 얻은 뒤 2015년과 2016년에는 평당 단가는 각각 475만 원, 780만 원으로 치솟았다. 주민 삶의 터전이 사시사철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로 뒤바뀌면서 주요 상권이 형성됐고 상권 형성은 집값 폭등을 의미했다. 월세는 버티기 어려워졌고 일부 집들은 외지인 소유로 변했다. 도시재생의 모범으로 꼽히던 감천문화마을이지만, 수십 년간 마을을 지켜왔던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구획 상 감천문화마을 거주 주민으로 분류되는 감천2동 12~18통 인구는 도시재생 이전인 2009년 2969명에 비해 지난해 1925명으로 1044명(35%)이 줄어들었다. 이 정도 감소 폭이라면 약 5년 후에는 마을 인구가 1000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마저 나온다. 한 마을 주민은 “마을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데 우리의 삶은 발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삶의 터전 관광지로 바뀐 감천마을

지난해 감천2동 12~18통 ‘마을 주민’

10년 새 2969명→1925명으로 줄어

철거 수순 ‘산복도로 갤러리’

작품 관리 안되고 먼지만 쌓여

주민 “행정기관 실적용’ 불만 목소리

1600여 가구 ‘천마마을’

文 정부 ‘도시재생 뉴딜’ 선정

도로 들어서며 가옥 철거 위기

남부민1동 ‘남일이네 가게’

정부 지원 중단 뒤 간판 내려

“마을 활동가 떠나면 곧장 위기”

‘흉물’로 방치된 거점시설

부산 동구 망양로 산복도로 중턱에 위치한 ‘산복도로 갤러리’가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 산복도로 갤러리는 산복도로 대변신을 목표로 시작됐던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하나인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지난 25일 찾은 산복도로 갤러리. 1층에는 산복도로의 풍경이 담긴듯한 빛바랜 사진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고, 2층에는 깨진 가구 조각들이 전시돼 있다. 작품명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조차 없어 무엇을 전시해 둔 것인지 알기조차 어렵다. 작품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있어 한눈에 봐도 수년간 관리되지 않은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역 주민들은 “수년 동안 관리도 되지 않고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며 부산시에 갤러리 철거를 최근 공식 요청한 상태다.

산복도로 갤러리의 철거 수순은 지난 9년간 810억 원이 투입돼 진행된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주민과 동떨어진 채 하드웨어 만들기에 치중했던 도시재생의 민낯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산복도로 프로젝트로 낙후된 계단, 난간, 보행로 등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수십 억 원을 들여 만든 일명 ‘도시재생 거점시설’들은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벽화 그리기, 조형물 설치 같은 경관 사업도 설치 이후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하면서 조성 당시 ‘행정기관 실적용’ 아니었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초량동 주민 이 모(40) 씨는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고 멋진 건축물이라 한들, 주민들이 원치 않는 작품이고 건물만 덩그러니 세워 놨는데 무슨 도시재생이고 산복도로 르네상스냐”고 지적했다.

부산시 지자체와 도시재생 용역 컨설팅 등을 진행해 온 싸이트 플래닝 이창민 실장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이라 하면 예산 사용이 쉬운 시설 짓기 계획이 난무하는데 꼭 필요한 시설인지, 예산 낭비는 아닌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주민 소외되는 도시재생 뉴딜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맞은편에는 1600여 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천마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가장 윗집까지 가려면 체감상 경사 30도가 넘는 고지대 마을이다. 바로 앞 감천문화마을에 관광객이 들끓었지만 천마마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017년 마을에 대변화를 예고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문재인 정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마을이 선정된 것이다.

뉴딜사업에 선정된 천마마을에는 2021년까지 총사업비 414억 원이 투입된다. 사업 계획에 따르면 천마마을에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들어오고, 소방도로가 나고, 공공임대주택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대변화가 당황스럽다.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소방도로가 들어서면 철거해야 하는 가옥이 대거 생겨난다. 이 마을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우리 집 쪽으로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들어와서 집이 철거된다는데 당장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일선 지자체 도시재생 담당자들은 뉴딜 사업을 ‘지역 발전 로또’로 표현한다. 뉴딜 사업에만 선정되면 예산 폭탄이 지역에 투하되기 때문이다. 뉴딜사업 공모를 통해 5년간 전국 500여 곳에 총 50조가 투입된다.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사업계획이 필요한데, 낙후된 지역 대부분이 하드웨어 설치를 계획으로 내세운다. 천마마을 같은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부터 대형 대교 건설 같은 도시재생과는 다소 거리가 먼 토목사업까지 도시재생에 포함돼 있다. 부산에서는 2017년 4곳, 2018년 7곳, 2019년 6곳이 선정돼 총 17곳에서 1조 원 규모 ‘메가톤급’ 사업이 벌어진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지자체 간 무리한 경쟁 속에 이뤄지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민 소외’를 우려한다. 천마마을에 펼쳐지는 대규모 도시재생으로 정작 주민이 마을을 떠날 위기에 처한 모순적인 현상이 주민 소외의 대표적인 현실이다.

부산 도시재생지원센터 변강훈 센터장은 “뉴딜사업이 도시재생 첫 취지는 사라지고 지자체 대형 사업 형태로 변질되는 모양새다”면서 “5년 계획 뉴딜사업도 반환점을 돈 만큼 현 상태를 냉철히 돌아보고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무너지는 마을 공동체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던 서구 남부민1동 마을 주민들이 2016년 ‘남일이네 생선가게’를 열었다. 마을 공동체 기금 마련을 위한 생선가게는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속에 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하지만 2017년 정부 사업비 지원이 중단된 뒤 남일이네는 위기를 맞는다. 정부 지원이 끝난 뒤 주민들을 돕던 마을 활동가도 마을을 떠났다. 가게 수익은 나날이 떨어졌다. 생업이 있는 주민들로 이뤄진 공동체에는 회계업무를 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고 가게 발전을 고민할 동력도 부족했다. 수익이 줄고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조합을 탈퇴했다. 올해 초 남일이네 생선가게는 간판을 내렸다.

지난 10년간 부산에 도시 재생 광풍이 불면서 마을주민들은 저마다 마을 자립을 위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공동체 자립을 위해서는 안정된 재정이 뒷받침 돼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구청 등에 자문을 해 카페, 기념품가게 등 거점시설 내에 마을 경제공동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부산 118개 공동체 가게들 중 40%인 48개가 카페이거나 기념품 가게다.

천편일률적이고 특색 없는 공동체 사업은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 교육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을 공동체 복원을 목표로 2011년부터 부산 71개 마을에서 진행된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 이 사업의 경우 도시재생 전문가인 활동가 2명이 20개 마을을 컨설팅한다. 제대로 된 마을 문제 발굴이나 컨설팅제공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산시와 지자체 소속 마을 활동가 43명은 모두 계약직 신분이다. 한 도시재생 전문가는 “마을활동가가 떠나면 곧장 위기를 맞는게 부산 마을 공동체들의 현실이다”며 “그동안의 도시재생 사업이 주민 역량강화, 공동체 강화를 중심으로 진행됐는지 살펴볼 때다”고 말했다.

곽진석·서유리·박혜랑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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