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멧돼지, 잡아도 못 먹어서 더 골치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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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거나 사살된 멧돼지들은 그동안 식용으로 처리됐으나 최근 정부 방침 변경으로 반드시 소각·매립해야 한다. 멧돼지들이 포획용 대형 트랩 안에 잡혀있다. 부산일보DB 잡히거나 사살된 멧돼지들은 그동안 식용으로 처리됐으나 최근 정부 방침 변경으로 반드시 소각·매립해야 한다. 멧돼지들이 포획용 대형 트랩 안에 잡혀있다. 부산일보DB

환경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 사체의 자가소비를 완전 금지하자 부산지역 지자체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 매립과 소각 등 사체 처리에 필요한 예산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지역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 돼지열병 확산 저지

전국에 식용 등 자가소비 금지

사체 소각·매립 예산 전혀 없어

부산 지자체, 처리 방법 고심

재난안전기금 이용 긴급 검토

”지역 고려 없는 방침” 지적도

환경부는 지난 28일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멧돼지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 모든 지역에 대해 수렵·포획한 멧돼지 사체의 자가소비를 금지했다. 앞서 이달 3일부터 환경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완충 지역인 10개 시·군에만 멧돼지 자가소비를 금지했는데, 관련 대책을 강화하면서 대상지를 전 지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부산 각 구·군은 환경부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난감한 기색이다. 자가소비가 금지되면서 앞으로는 멧돼지 사체를 소각이나 매립해야 하는데 관련 예산이 전혀 없는 탓이다. 지자체는 그동안 환경부 지침에 따라 수렵인의 자가소비(식용), 지역주민 무상제공 등 방법으로 멧돼지 사체를 처리해 왔다. 두 방법 모두 소각이나 매립과 달리 별도의 예산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환경부의 금지 조치 후 부산에서 멧돼지가 처음 출몰한 동래구는 사체 처리 방식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지난 28일 부산 동래구 명륜동의 주택가에 30~40㎏ 크기의 멧돼지가 나타나 그중 4마리가 사살됐다. 동래구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멧돼지 사체의 시료를 검역소로 보냈으며,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이후 멧돼지 사체 처리는 이전보다 까다로워진 상태다. 환경부의 멧돼지 사체처리요령에 따르면, 멧돼지 사체를 소각할 경우 전문 소각장이나 이동식 소각 장치 등을 이용해야 한다. 매립의 경우에도 깊이 1m 이상 구덩이를 판 뒤 폐수 유출 방지용 비닐 위에 폐사체를 놓고 토양과 생석회를 번갈아 덮는 등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부산시는 29일 각 구·군 담당자와 회의를 열어 차후 멧돼지 사체 처리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부산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당장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각 지자체가 멧돼지 사체를 소각·매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우선 급한 대로 재난안전기금 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도심지 환경에 맞는 사체 처리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환경부가 멧돼지 사체 처리에 필요한 예산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편의적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부산 지자체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전 지역에 자가소비 방식을 금지한다고 갑자기 공지한 탓에 일선 지자체들이 크게 당혹스러운 상태”라며 “아프리카돼지열병 관리 단계를 지역별로 달리하거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면 혼란은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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