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덤덤해서 더 차가운… 중국 영화계 최대 문제작
좋은 영화는 답을 제시하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던진다는 건 간과하기 쉬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말이다. 이른바, 문제작이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2018년 중국영화계에 투척된 최대의 문제작이다. 이 영화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234분에 이르는 장대한 러닝타임이 그렇고, 중국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고발하는 최근 보기 드문 영화라는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강렬한 데뷔작을 남긴 후보 감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유작이 되어버린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접하고 나면 이런 정보들이 모두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느낄 것이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절망스런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덤덤해서 더 차갑게 느껴지는 시선으로 절망이란 단어조차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타협 없는 영화다.
네 명의 인물들이 겪는 최악의 하루를 중심으로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다. 장위는 친구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른다. 현장을 목격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펑위창은 아버지를 모욕한 상대를 계단에서 밀었다가 중태에 빠트린다. 두려워진 그는 아끼는 당구큐대를 팔아 그 돈으로 도망을 치려한다. 펑위창이 함께 도망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학생 왕위원은 학교 교사와 원조교제 중인데, 학교에 소문이 나자 어머니조차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퇴역군인 리총시는 늙고 쓸모없다는 이유로 양로시설에 보내질 처지에 놓인다. 손녀와 함께 하고픈 그는 자신의 개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는 핑계로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지만 어느 날 애지중지하던 개가 다른 개에게 물려 죽는다.
네 명의 인물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내팽개쳐진 존재들이다. 각자의 지옥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만저우리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다. 그들에게 코끼리는 일종의 희망이자 안식처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코끼리는 타의에 의해 동물원에 갇혀 있는 존재다. 갇혔지만 살아남기 위해 거기에 적응한 것에 불과하다. 후 보 감독이 바라본 중국사회의 희망은 그 정도였던 것 같다. 해피엔딩을 꿈꿨던 이야기는 진즉에 끝났다. 양심, 정의, 사랑 같은 말랑한 단어들이 진즉에 빛바랜 사회에는 동물원의 쇠창살이라는 보호조차 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배회한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너무 솔직해서 먹먹하게 느껴지는 그 현실을 오랜 시간 공들여 보여줄 뿐, 감히 어떤 대안이나 방향,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그거면 족하다. 어쩌면 영화에게 허락된 건 딱 거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
송경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