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돼지국밥 로드] 4. 똑같은 돼지국밥은 없다
“돼지국밥 경우의 수만 300가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부산돼지국밥은 다 똑같지 않다. 겉모양도 그렇지만 재료, 조리 방법, 찬의 종류, 먹는 방법까지 조합한다면 “국밥 고수가 될수록 300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는 송정삼대국밥 3대 경영자 김기훈(50) 씨의 말도 과장이 아닐 수 있다.
겉모양·조리법·먹는 법 다 달라
뼈 오래 삶을수록 국물 뽀얘져
목뼈·등뼈 쓰면 국물 맛 시원해
‘밥 말아주는 곳=토렴’은 오해
뜨거운 국물 원하면 직화 택해야
맛 차별화에 다진 양념도 한몫
■뼈와 고기, 물, 불의 조합
돼지국밥은 외양상 크게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로 나뉜다. 국물을 내는 재료는 뼈와 고기다. 보통 뼈를 오래 삶을수록 뽀얗고 고기를 삶은 국물은 맑다. 식당마다 뼈와 고기를 넣는 비율과 순서, 끓이는 시간에 따라 국물의 색과 농도가 다르다. 뼈를 고면서 고기를 수시로 삶아 내거나 한 국물에 뼈와 고기를 번갈아 삶거나 처음부터 뼈와 고기를 따로 삶기도 한다. 고기로만 국물을 내는 곳도 있다.
뼈는 사골이라 부르는 다리뼈를 대부분 쓴다. 넓적다리뼈, 무릎뼈, 종아리뼈로 이어지는 부위다. 민아식당(중앙동)은 등뼈 위주로 곤다. 엄용백돼지국밥(수영동)의 ‘진한 밀양식 돼지국밥’은 4가지 부위 뼈를 쓴다. 엄수용(37) 사장은 “사골은 구수한 맛, 목뼈와 등뼈는 시원한 맛, 족은 감칠맛을 내는데 4가지 배합 비율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말했다.
고기 부위별로 보면 국밥에는 앞다리살과 목살 살코기, 수육에는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나 항정살을 쓰는 곳이 가장 많다. 수영공원돼지국밥을 비롯한 가야공원로 식당은 대부분 국밥에도 항정살을 넣는다. 할매국밥(범일동)은 국밥과 수육 모두 삼겹살을 쓴다.
엄용백돼지국밥은 좀 더 세분화했다. 일반 국밥에는 토시살, 다리살을 넣고, 2000원 더 비싼 극상 국밥에는 여기에 항정살, 가브리살과 내장에 속하는 오소리감투를 추가한다.
돼지머리 국밥은 또 하나의 카테고리다. 머리뼈와 붙은 고기를 같이 삶으면 국물은 누르스름하게 진해지거나(수정동 88수육, 부평동 양산집), 뽀얘지다가 살짝 투명해진다(부평동 밀양집). 밀양집 정정아(51) 씨는 “뼈 맛이 고기에 배면서 간을 한 것처럼 깊은 맛이 나서 손님들이 다른 집 국밥은 싱거워서 못 먹겠다더라고 한다”고 말했다. 머릿고기도 부위가 다양해서 양산집에는 살코기국밥과 비계국밥이 따로 있다.
■ 밥을 말지 않은 토렴도 있다
조리 방법은 토렴과 직화로 나눌 수 있다. 토렴은 밥이나 고기를 담고 솥의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라내면서 데워 내는 것을 말한다. 직화는 뚝배기째 팔팔 끓여서 내는 것이다. 부산돼지국밥 로드(porksoup.busan.com)의 식당 30곳을 분류하면 20곳이 토렴을 하고, 9곳은 가스불에 끓여 낸다. 본전돼지국밥(초량동)은 토렴도 직화도 하지 않고 뜨겁게 데운 뚝배기에 국물과 고기를 담아서 낸다.
‘밥을 말아주는 곳=토렴’ 공식은 흔한 오해다. 송정삼대국밥(부전동), 영진돼지국밥(신평동), 합천국밥집(용호동)처럼 따로국밥만 팔지만 고기 토렴을 하는 곳이 있다.
과거에는 보온시설 없이 가마솥만 걸고 국밥을 팔려면 토렴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직화로의 변화는 뚜렷하다. 보온밥통이나 온장고가 생겼고, 무거운 뚝배기를 10~20회 이상 기울여야 하는 노동력을 대량 가스 설비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토렴국솥에 국물이 들락날락 하는 모습을 비위생적이라고 여기거나 남은 밥을 말아 준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노포도 예외는 아니다. 1968년 개업한 마산식당(범천동)이 올 1월, 1954년 본점에서 시작한 경주박가국밥 토곡점이 지난해 8월부터 토렴을 직화로 바꿨다. 갈수록 뜨거운 걸 찾는 손님의 수요에 따른 결정이었다. 반면 합천일류돼지국밥(괘법동)은 2003년 개업 이래로 토렴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손님의 수요다. 박지영(41) 사장은 “80도 정도로 내는 토렴국밥이 맛은 물론이고 빨리 식사를 하려는 우리 손님층에도 맞아서 인건비 부담이 있지만 토렴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향 따라 즐기는 부산돼지국밥
다진 양념은 대개 고춧가루에 파, 마늘, 양파, 간장이나 젓국을 섞어 만든다. 이 중 식당마다 된장(수안동 재민국밥), 간 양파(영진돼지국밥), 간 마늘(합천일류돼지국밥)처럼 두드러지는 재료들이 제각기 독특한 맛을 낸다. 30곳 중에는 없지만 안락동 또랑돼지국밥은 파를 삭힌 양념으로 유명하다. 양념은 갈수록 먹는 사람이 취향대로 넣어 먹을 수 있게 한 식당이 많아지는 추세다.
부산돼지국밥을 다른 지역 돼지국밥과 구별하게 하는 부추, 사투리로 정구지도 모두 같지 않다. 반찬으로 대부분 젓국으로 무친 부추 겉절이를 내지만 부추김치(중동 형제전통돼지국밥)나 생부추(88수육)를 주는 곳도 있다. 민아식당은 국밥에 부추 대신 방앗잎을 넣는다.
국밥 식당이 소면을 별도로 제공하는 것은 1960~70년대 국가 주도로 진행된 혼분식장려운동의 흔적이다. 30곳 중에서는 10곳이 소면을 제공한다.
가족 단위 외식이 늘면서 어린이 메뉴를 두는 곳도 생겨났다. 양산국밥(중동)은 유아식사(3000원)를 따로 파는데, 어린이용 수저를 씻어서 내기 바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