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그림으로 항명하다
호주 원주민 출신인 작가가 유럽 중심의 일방적인 역사관, 강제된 단일 서사에 그림으로 반기를 들었다.
다니엘 보이드의 국내 첫 개인전 ‘항명하는 광휘’전이 2020년 2월 29일까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 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다.
다니엘 보이드 국내 첫 개인전
내년 2월말까지 국제갤러리서
강제된 서구 식민 서사에 맞서
가려진 원주민의 역사 드러내
검은 바탕 위에 풀(glue)로 찍어서 만든 수없이 많은 하얀 점은 인류의 집단 지성에서 ‘복수성(plurality)’ 즉 ‘복수의 관점’이 가지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지난 13일 부산을 찾은 다니엘 보이드는 “작품 속의 점(dot)은 세상을 이해하는 나의 시각을 표현하는 렌즈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작품 하나에 수많은 렌즈를 장착해 세상을 단일 역사 구조가 아닌 다수의 서사로 읽어 낸다.
점 사이 까만 공간을 통해서는 실제로 눈에 보이지만, 그 속은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동시에 ‘알지 못하는 것’ ‘잘못 알려지는 것’ ‘잘못 해석될 수 있는 것’의 가능성도 상징한다.
보이드는 “역사적으로 시민화 되고 억압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서사도 억압돼 왔다. 억압된 서사에 대한 공간을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이드는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며 호주 역사의 재해석에 관심을 뒀고, 호주 역사 형성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한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한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Untitled(YMKSMRWAKP)’는 호주를 식민 지배한 영국인들이 현지 원주민 지도자의 목에 이름표를 걸고 찍은 ‘샌디 왕(King Sandy)’의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과거에 실존했던 샌디 왕이 현재는 보이드 작품 속에 존재하는 ‘복수성’과 샌디 왕이 역사적 인물이 되는 과정에서 실제 샌디 왕과 영국의 시각으로 필터링된 샌디 왕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수성’이 중첩돼 있다. 여기에 더해 서양 미술사에서 변두리의 상징성을 갖는 유색인종을 중심 작품으로 크게 표현해, 미술에 있어서 유색인종의 위치도 다르게 보여 준다. ‘샌디 왕’을 다룬 작품 하나에 3개 이상의 복수성을 담아낸 셈이다.
보이드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고향이었던 섬에 원주민이 남긴 모래 드로잉을 차용한 작품 ‘Untitled(FCSDFPIV)’를 통해서는 문화적 단절을 이야기한다. 그는 “모래 드로잉이 섬에서 원래 가지던 의미, 사진에 담겨 사료로 보존될 때 의미, 인터넷을 통해 작가에게 전달될 때 의미, 작업을 통해 도형이 작가와 연결될 때 의미는 제각기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이드는 관객들에게 “역사에 있어 주류 서사와 다르게,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지식을 쌓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풀로 점을 찍은 뒤 이미지를 넣는 것인지, 이미지 위에 점을 찍는 것인지 묻는 말에 보이드는 “비밀”이라고 답했다. 결국 그의 작품 제작 기법에 대한 해석까지 ‘복수의 관점’을 가지게 됐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