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폐지 줍는 노인과 513조 슈퍼예산
이동식 부산시고지도매업협동조합 이사장
내년 예산안이 513조5000억으로 확정됐다. 국민 남녀노소 1인당 994만 원씩 돌아갈 만큼의 슈퍼예산이다. 노인복지예산도 16조5800억을 웃돌아 750만 노인 1인당 221만 원이 기초연금·노인단체 지원 등 24개 항목으로 지출된다.
이 예산이 효율적으로 잘 사용되는지 보자. 부산시 A구의 경우 내년 저소득층에 지급될 미세먼지 마스크 지원 사업으로 11억 원이 지출된다. 평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호흡이 가쁜 노인들은 이걸 사용하지 않고 수령하여 보관만 하다가 버릴 가능성이 높아 애초부터 실효성 없는 예산 낭비라는 문제점을 부산일보가 지적(2019. 11. 27자)했다.
부산의 노인 수는 59만7928명(2019. 3 통계청)이고 300여 개 고물상에 폐지를 갖다 파는 노인 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우리 조합에서는 약 8000여 명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이분들을 위한 예산은 0원이고 전국이 같은 상황이다.
2018년부터 폐지·고철·폐포장지 3종을 폐기물에서 제외해 순환 자원으로 인정하는 자원순환기본법이 시행 중이다. 그러나 재활용품의 수거 첨병인 노인들의 수, 열악한 근로환경, 수입 등에 관한 정부 조사 자료는 물론 관련 복지정책도 전무한 실정이다.
폐지유통과정을 보자. 허리 휜 노인들이 골목골목 다니며 주워 모은 종이박스를 반듯하게 펴고 쌓고 묶어 손수레에 싣고 고물상까지 끌고 오면 고물상 운영자는 대부분 동네주민인 어르신의 폐지를 계근하여 3~4000원을 건넨다. 이를 섭섭한 표정으로 받아 가는 어르신의 모습에 마음이 안타까워 진다.
폐지가격이 1㎏당 재작년 150원, 작년 110원이었는데 현재 40원으로 하락했다. 부가가치가 낮고 임금인상에 취약한 노동집약 분야인 폐지수집·운반업계는 경영 임계점에 도달해 겨우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전 세계 폐기물의 50%를 소화하던 중국이 2018년 폐기물 금수 조치에 이어 2019년 전면 금수로 확대함으로써 유럽산 폐지가격이 2018년 대비 300% 하락했음을 유럽재활용협회(EuRIC)가 지난 9월 발표했다.
각국에 넘쳐나는 폐지 여파로 질 좋고 값싼 미·유럽산 폐지수입 파고가 국내 폐지업계를 강타해 결국 국내 폐지가격이 폭락했고 그 여파가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같은 양의 폐지를 주고도 받는 돈이 1년 새 반 토막, 2년 새 1/3토막 났음에도 불만을 표출할 아무런 힘도, 조직도 없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사회 기여도를 보자. 폐기될 물질을 재활용 자원으로 1차 분리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동내 환경미화에 기여하며, 육체적 노동을 함으로써 대체로 건강하여 정부 보건의료 예산 절감에도 기여한다.
그런데도 단체 행동할 힘이 없고 조직이 없어 정부의 관심권 안에 전혀 들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어르신들이 폐지 줍는 일이 힘만 들뿐 돈이 되지 않는다고 일제히 수집을 그만둔다면 어떻게 될까? 온종일 일해서 1만 원(200㎏)도 못 버는 일을 대신하겠다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고 며칠 내에 순환자원이 폐기물로 변해 골목골목 뒹굴며 생활환경이 나빠지면 그때 비로소 정부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 전국의 폐지 줍는 노인들을 주민센터나 고지(폐지)조합에 환경미화 노인으로 등록시키고 보람을 느끼면서 계속 일을 하실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사상 최대의 내년 슈퍼예산 한 귀퉁이를 할애해 어르신들이 수거하는 기본량에 현금을 그냥 얹어 주고 더 이상 수거는 추가수입으로 갖게 함으로써 폐지가격 폭락의 아픈 가슴을 위로해 드리면 어떨까.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온정이 절실해지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