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종교, 권력 목표로 정치 대할 때 ‘타락의 길’ 빠져
종교-정치 어떻게 만나야 하나
보도와 논평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기사인 ‘논설위원의 시선’이 오늘부터 격주로 구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논평의 세계에 머물던 논설위원들이 직접 보도 현장을 찾아 써 내려 가는 ‘논설위원의 시선’은 심층 분석, 전문가 대담, 직격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뉴스의 흐름과 사회 이슈를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더 친절하게 전해 드릴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 전광훈 서울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잇단 극우적 언행으로 질타를 받고 있으며 공직선거법 등 위반으로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대표회장으로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산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주일 만에 20만 명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에는 종교인이 저렇게 정치에 노골적으로 뛰어들어도 되나 하는 걱정이 묻어 있습니다. 종교는 과연 정치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걸까요?
헌법에 ‘정교분리’ 원칙 있지만
현실적으론 경계 아주 모호
한국 종교 정당 원내 진출 실패
교인 80%가 “기독교정당 반대”
“종교 관심사 정치도 포함하지만
교회 등 단체 내세우는 건 잘못”
■정교분리,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한국은 정교분리의 나라입니다. 헌법 제20조 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좀 추상적이고 허술하다는 느낌입니다. ‘분리된다’라고만 했지 어디까지가 정치의 영역이고 종교의 영역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선 종교와 정치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개신교계가 주최하는 국가조찬기도회가 그렇습니다.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해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조찬기도회입니다. 조찬기도회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 정책 결정자들이 참여합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기도 모임에 대통령 등이 참여하는 게 정교분리 원칙에 맞는 일일까요? 헌법 위반 아닐까요? 어쨌든 조찬기도회는 1966년 처음 열려 연례행사로 지속돼 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 불교계가 주최하는 구국 법회 등 여러 종교 행사에 고위 공직자들이 참석하고 있지만 별다른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습니다.
■종교, 정치를 외면할 수 없다?
“정교분리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에 침묵하고 있으면 큰 죄를 범하게 된다.” 안상수(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 샬롬나비라는 개신교 단체가 주최한 ‘교회와 정치’ 학술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현역 정치인이라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소 미사 강론을 통해 “정치인들이 더 잘 통치할 수 있도록 사제들도 능력 닿는 대로 최대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임원인 박경만 하나로교회 담임목사는 “정치를 포함해 모든 영역에 하나님 주권이 미친다. 기독교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말합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헌법상의 정교분리가 종교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건 아니라는 견해를 보입니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가 대표적인데, 그는 “정교분리의 원칙은 국가의 종교 침해를 금지하는 관점에서 논의돼야 하며, 종교인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종교 정당
한국은 헌법상 정교분리의 나라이면서도 종교에 기반한 정당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8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종교 정당은 그린불교연합당, 기독당, 기독자유당입니다. 종교 정당이 본격 등장한 것은 2012년 총선 때였습니다.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과 기독자유민주당이 그것이었는데, 당시 정당득표율이 각각 0.2%와 1.2%에 머물러 의석을 얻지 못했습니다. 2016년 총선 때도 기독당, 한국기독당, 불교연합당이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진 인구는 2155만여 명입니다. 불교인이 762만 명, 개신교인이 967만 명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지금까지 국회 원내에 진출한 종교 정당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괴리는 어디서 생긴 걸까요.
2012년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정교분리에 대해 찬반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이 67.2%, 반대가 12.9%로 나왔습니다. 특이한 건 개신교 신자 층에서 찬성률이 80.6%로 가장 높았다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실시한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 인식조사’ 결과 목회자 등의 기독교 정당 창당과 정치 참여에 대해 반대가 79.5%, 찬성이 5.2%로 나왔습니다.
■종교, 정치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현실은 종교와 정치가 분명하게 분리되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을 지낸 원로 신학자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정치하는 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목사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당시 많은 사람이 정치적 메시아를 갈구했지만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기독교 정당들이 나와도 교회는 그와 관계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정치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는 있으나 교회 같은 종교 단체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런 뜻인 듯합니다.
요컨대, 종교의 관심사는 정치적인 것까지 포함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종교의 언어를 거치는 순간 정치는 물론 종교도 왜곡되기 십상입니다. 정치를 대하는 종교의 자세는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종교가 사랑, 평화, 정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 대신 개인의 야망과 권력을 목표로 정치를 대할 때 타락의 길로 나가게 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많이 목격됐습니다.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어쩌면 종교가 정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전광훈 목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