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0세대 아파트 숲에 망가질 복천동·동래읍성 문화 유산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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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 복천동고분군 주변에서 충렬사 인근까지 66동, 5200세대의 방대한 아파트 단지가 추진되고 있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국가 사적의 역사적 경관이 크게 훼손되고 부산의 역사적 심장부인 동래읍성 지역을 대대적으로 파헤치기 때문이다. 부산일보DB 부산 동래구 복천동고분군 주변에서 충렬사 인근까지 66동, 5200세대의 방대한 아파트 단지가 추진되고 있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국가 사적의 역사적 경관이 크게 훼손되고 부산의 역사적 심장부인 동래읍성 지역을 대대적으로 파헤치기 때문이다. 부산일보DB

문화유적지구인 부산 동래구 동래읍성 지역 안에 복천동고분군을 둘러싸고 66동, 5200세대의 대단위 아파트가 추진되고 있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0만㎡에 5~45층 5200세대를 짓는 ‘복산1구역 재개발’ 사업의 규모는 매머드 재개발로 알려진 ‘거제2구역’(23만 8000여㎡, 4470세대)이나 ‘온천2구역’(23만 2000여㎡, 3853세대)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따라서 국가 사적(제273호)인 복천동고분군의 역사적 경관이 크게 훼손된다는 점과 부산의 역사적 심장부인 동래읍성 지역을 대대적으로 파헤친다는 점에 대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대형 ‘복산1구역 재개발’

문화재위 심의 땐 최고 32층

허가 후 45·38층 5동 추가

동래읍성은 성벽만 남게 돼

“문화재 매장 가능성 100%”

‘부산 역사의 심장’ 훼손 우려

“시민적 공론화 과정 필요”


■복천동고분군 역사적 경관 훼손

복천동고분군은 가야 고분군 중 보물 지정 건수가 5건으로 가장 많은 4~5세기 가야의 핵심 유적이다. 1981년 가야고분군 중 가장 먼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가치의 복천동고분군이 아파트 콘크리트 장벽으로 빙 둘러싸여 버리는 것이다.

복천동고분군은 근년 수난의 연속이었다. 2018년 8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가야 고분군 7곳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복천동고분군은 빠져 버렸다. 일대 재개발 계획 때문에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이제 그 재개발 계획이 콘크리트 숲으로 현실화될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현재 재개발 관련 절차는 다소 진행됐는데 특히 부산시 문화재위원회의 조건부 허가 이후 초고층 아파트 계획이 추가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2016년 8월 9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 조건부 허가를, 2018년 1월 11회 심의를 거쳐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주민설명회도 열렸다.

그런데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 때는 아파트 최고 높이가 32층이었으나, 이후 45층 4동과 38층 1동이 건설 계획에 추가된 것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부분의 위법성 여부를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개발 사업을 위한 행정 절차는 아직 상당 부분 남아 있는 상태다.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경관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래읍성 지역 대대적 파괴 ‘눈앞에’

40만㎡에 이르는 재개발 구역은 동래읍성 지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방대한 넓이다. 그야말로 동래읍성 내부를 대대적으로 파헤칠 수밖에 없는 규모다. 그래서 재개발은 동래읍성 성벽만 남긴 채 부산의 역사적 심장부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서 지하 3~4층을 굴착하면 선사 시대로부터 삼한 가야 삼국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역사적 지층이 모두 상실될 거라는 주장이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해당 지역에 문화재 매장 가능성을 100%로 점치고 있다. 중요 매장문화재가 나와 문화재 보호구역이 확대되면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데 부산시가 이런 정보를 상세히 전달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도시 부산부’를 건설하면서 ‘전통사회의 인문 공간’인 동래, 즉 동래읍성을 계획적으로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됐다. 임진왜란 현장으로 한강 이남에서 최고 아름다운 문루로 꼽히던 동래읍성 남문도 그때 없어졌다. 그런 치욕의 역사가 우리 당대에 방식을 달리해서 되풀이돼서야 되겠는가, 라는 것이다.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동래 상춘정 유적이 그 예다. 현재 동래유치원 안에 있는 이 유적은 지역문화 향상의 토대를 이뤘던, 19세기 지방 유일의 시사(詩社)가 이뤄진 곳이다. 이곳에는 또 동래부 역사를 담은 생사비(生祠碑) 2기, 거사비(去思碑) 3기 등이 있다. 이런 유적과 흔적들이 한꺼번에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더욱이 재개발 구역 인근에 있는 부산시 지정문화재 14건은 고층 아파트 위세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충렬사 인근에 32층 4동이 들어서고, 한창 복원 중인 동래부 동헌 가까운 곳에 38~45층 5동이 들어서는 것은 역사적 경관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으로,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개발 공론화 필요하다

부산시는 지난해 9월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고 건축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부산건축선언을 전향적으로 발표했다. 부산시민공원을 둘러싼 아파트 층수와 배치 조정도 동일한 차원에서 이뤄졌다. 동래읍성지를 파헤치고 복천동고분군을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게 될 ‘복산1구역 재개발’ 문제도 그냥 넘길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이 사업이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조건부 통과했으나, 과연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판단인지 시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 문화재위 심의 이후 38~45층 고층 아파트 건설이 포함됐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은 더욱 절실하다. 부산시 김광회 도시재생균형국장도 “복산1구역 재개발은 아직 절차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필요하다면 공론화 과정도 거칠 수 있다”고 밝혔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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