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일회용품’ 정책에 사라지는 호텔 어메니티
어메니티 : 객실 내 비치된 무료 용품
특급호텔은 사치를 위한 공간이다. 어메니티(amenity)는 그 정점에 서 있는 물건이다. 롯데호텔 부산은 영국 왕실이 애용한다는 ‘몰튼 브라운’을, 파크 하얏트 부산 호텔은 프랑스 브랜드 ‘르 라보’를,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은 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록시땅’을 어메니티로 제공한다. 호텔 마니아들에게 어메니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메니티를 호텔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정부 정책이 호텔업계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어메니티, 환경 파괴 원인 꼽혀
2024년 모든 업소 무상 제공 금지
호텔 측 “투숙객 컴플레인 걱정”
친환경 대용량 용기 비치 추세
규제보다 호텔 자발적 실천 중요
■호텔도 투숙객도 ‘어리둥절’
어메니티는 호텔 등 숙박업소가 객실 내에 비치해 두는 샴푸, 린스, 바디워시, 면도기, 칫솔 등을 일컫는 말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모품이 대다수다.
정부는 이 같은 어메니티가 환경파괴의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환경부는 ‘일회용품 줄이기 중장기 계획’을 통해 2022년에는 50실 이상 숙박업소, 2024년부터는 모든 숙박업소에서 일회용 위생용품을 무상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호텔업계는 예상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모양새다. 부산의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어메니티는 투숙객의 컴플레인과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특급호텔 간 경쟁이 치열한 시기인데 과연 누가 어메니티를 선제적으로 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유력한 대안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대용량 펌핑 용기를 호텔에 배치하는 것이지만 만만치 않은 문제다. 또 다른 특급호텔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호텔과 모텔을 구분하는 요소 중에 하나가 대용량 펌핑 용기의 유무”라며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이 그렇게 빠르게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용량 어메니티를 배치할 경우 ‘되팔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금도 특급호텔의 유명 어메니티를 사용하지 않은 채 갖고 나와 중고마켓 등에서 판매하는 일이 허다하다. 호텔 입장에서는 로션 등을 가져가는 고객을 일일이 확인하고 제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위생문제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이소정(30·여) 씨는 “특급호텔까지 가서 다른 사람들이 썼던 치약이나 샴푸를 쓴다고 생각하면 왠지 찝찝할 것 같다”며 “대용량 용기가 과연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고 말했다.
■친환경 추세…호텔에 맡겼더라면
그럼에도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특급호텔 브랜드도 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은 2021년까지 친환경 대용량 용기를 객실마다 비치할 예정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도 2020년 10월까지 객실에 펌핑이 가능한 대용량 어메니티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아난티는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는 고체 타입의 친환경 어메니티 ‘캐비네 드 쁘아쏭(Cabinet de Poissons)’을 지난해 8월 출시했다. 자체 개발한 고체 형태의 샴푸와 컨디셔너, 바디워시와 종이로 포장된 바디로션 등으로 어메니티를 구성했다. 사용하고 남은 비누는 투숙객에게 가져가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그래도 남은 비누는 양초 공예나 조각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아난티는 매년 60만 개 이상 어메니티용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어찌 됐든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니만큼 대용량 용기의 디자인을 세련되게 꾸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며 “어메니티를 원하는 고객에게 소정의 금액을 받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획일적인 규제가 국내 호텔 브랜드의 경쟁력을 깎아 먹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동의대 윤태환(호텔컨벤션경영학) 교수는 “특급호텔이 어메니티를 판매한다고 할 경우 과연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정할까 걱정스럽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은 호텔 어메니티처럼 작은 요소를 통해서 호텔 브랜드는 물론이고 도시 이미지를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친환경은 세계적 추세이고,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이미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시점”이라며 “국내 호텔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유도하는 정책이었다면 현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