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들 지키려 곰과 싸운 ‘부탄 곰 엄마’ 부산서 얼굴 되찾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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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야생곰에게 습격 받아 부상 당한 타시 데마(36·가운데) 씨. 16일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에서 치료비를 지원한 조마리아 셰프(39·왼쪽), 조카 초키(30) 씨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히말라야 야생곰에게 습격 받아 부상 당한 타시 데마(36·가운데) 씨. 16일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에서 치료비를 지원한 조마리아 셰프(39·왼쪽), 조카 초키(30) 씨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두 살배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히말라야 야생곰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다 얼굴을 크게 다친 부탄의 미혼모(부산일보 2019년 9월 19일 자 2면 보도)가 국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지난해 부산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미슐랭 셰프’들이 만찬 행사를 통해 모은 자선 모금액으로 동아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얼굴 크게 다쳤던 타시 데마 씨

동아대병원 수술 위해 입국

“도움 준 한국 사람들은 천사”

처음 사연 알린 조마리아 셰프

미슐랭 셰프들과 수술비 모아


부탄의 미혼모 타시 데마(36) 씨는 16일 함몰된 얼굴 치료를 위해 동아대병원 성형외과 임광열 교수팀을 찾았다. 자선 행사를 주관한 부산 해운대구 레스토랑 ‘차경’의 조마리아(39) 오너 셰프와 타시 데마 씨의 조카 초키(30) 씨가 동행했다. 데마 씨는 조 셰프의 도움으로 부탄에서 방콕을 거쳐 15일 부산 김해공항으로 입국했다.

이날 진료에 앞서 얼굴을 감싼 천을 푼 타시 데마 씨의 모습은 한 눈에 봐도 심각했다. 이마 오른쪽이 넓게 파였고, 턱 일부는 길게 잘려 나간 흔적이 깊은 상태였다. 짓눌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코에는 숨을 쉬기 위한 플라스틱 구조물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초기 진료 후 임 교수는 “CT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이전 얼굴을 완전히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일단 편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3주 동안 피부 이식 등 필요한 치료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부상의 정도를 볼 때, 사고 당시 상황을 ‘극심한 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라 짐작했다.

데마 씨는 지난해 2월 히말라야에 두 살배기 아들과 버섯을 따러 갔다가 야생곰의 습격을 받았다. 잠시 수유하던 틈에 곰이 뒤에서 덮친 것이다. 곰의 공격으로 데마 씨는 입과 코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연이은 곰의 공격에 턱뼈까지 산산조각 났지만, 데마 씨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붙들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곰의 여기저기를 때리며 맞서 싸웠다.

이 소리를 들은 주변 친척들이 다 같이 비명을 지르자, 곰은 그대로 도망쳤다.

타시 데마 씨가 16일 동아대병원 성형외과 임광열 교수에게 진료 받고 있는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타시 데마 씨가 16일 동아대병원 성형외과 임광열 교수에게 진료 받고 있는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피투성이가 된 데마 씨는 그제야 정신을 잃었다. 초키 씨는 “피가 너무 흘러 등에 업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면서 “마을에 있던 성인 남성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데마 씨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데마 씨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정신을 차릴 때마다 수유를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아이가 아파 혈변을 보고,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해 수유를 멈출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데마 씨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삶은 회복되지 못했다. 주민들이 함몰된 얼굴을 보고 전염병 환자로 취급해, 수개 월간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괴상하게 변한 엄마의 얼굴에 어린 아들은 수시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 데마 씨에게 부산은 ‘기적의 땅’이다. 그는 “부산으로 오며 비행기를 처음 타 봤다”면서 “조마리아 셰프를 비롯해 도움을 주신 한국 분들은 ‘사람 형상을 한 천사’”라고 말했다.

앞서 조 셰프는 지난해 9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세계 각국의 미슐랭 셰프 동료를 불러 자선 행사를 열었다. 부탄에서 ‘전통 음식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현지 공무원으로부터 데마 씨의 사연을 듣고 귀국하자마자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세계 1위 레스토랑 ‘노마’의 메뉴 개발 셰프부터 ‘2019 파리 레스토랑 어워드’ 올해의 디저트 셰프 등 화려한 경력의 동료가 선뜻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타시 데마 씨가 16일 조마리아 셰프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가방. 직접 짠 가방 안에는 마른 꽃잎들이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승훈 기자 lee88@ 타시 데마 씨가 16일 조마리아 셰프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가방. 직접 짠 가방 안에는 마른 꽃잎들이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승훈 기자 lee88@

당시 모은 기부금 1000만 원을 이번에 데마 씨의 항공비, 체류비, 치료비로 쓰고 있다. 데마 씨가 부탄에서 떠나기 전 친척들은 십시일반 모은 600달러를 치료비에 보태라고 주기도 했다.

조 셰프는 데마 씨가 치료 후 부탄으로 돌아간 뒤에도 생계를 이어가도록 매달 100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사연을 들은 부산예치과 이정구 원장 등은 데마 씨에 대한 무료 진료를 약속했다.

조 셰프는 “타시 데마 씨가 완치될 때까지 매년 같은 자선 행사를 열어 모금액을 지원할 것”이라며 “<부산일보> 보도 이후 알게 모르게 기부금을 내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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