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19 ⑥] 공동체 지향 정치, 국제 연대, 약자 보호가 전염병 이긴다
심층기획 '코로나19가 바꾼 항로, 미래 시계가 빨라졌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포스트 코로나19' 해법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제일 먼저 준비하고 맞이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국민들께서 한마음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의 불길이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순간이었다.
<부산일보>는 심층기획 '코로나19가 바꾼 항로, 미래 시계가 빨라졌다'의 마지막 순서로 경제 부문에 이어 정치와 국제 관계, 사회 등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각 분야에서 우리 삶에 몰아칠 변화와 그에 맞춰 필요한 대처 방안을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들어보았다.
■'공동체 지향 정치'로 위기 극복
4·15 총선을 막 끝낸 정치권에 국민의 엄중한 경고가 울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정치도 혁신하라는 것이다. 생사가 걸린 전염병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이해 관계만 따지면서 다투고 있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21대 총선 북강서갑 당선인)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여야의 정책 경쟁이 실종됐었다"며 "총선 전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도 선거용이라고 치부해버려 제대로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이어 "우리 정당사에 남을 위성정당이 나타나 정치가 비정상이 돼 버렸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정치권이 정상화, 상식화를 이루지 못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대선 전 경쟁에 불이 붙기 전까지 지금부터 1년만이라도 경제와 우리 삶 전반을 지배하는 코로나19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미래통합당의 부산 총선전을 이끌었던 서병수(부산진갑) 당선인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사실 정치 혁신에 앞서서, 당장 코로나19로 완전히 무너진 경제, 소상공인들을 어떻게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운을 뗀 그는 "정치권의 문제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법 이전의 문제다.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정치가 오로지 민생을 위해 국민을 보고 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서 당선인은 "지금은 너무 이념에 따른 정치싸움으로 비치는 게 문제다. 야당이 협력할 건 하고, 비판할 건 견제하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게 정상이다"면서 "그렇지만 공수처법 같은 있어선 안될 법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라 그게 잘 될지 의문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정치권이 공동체 지향 가치를 추구해야만 한다"고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거대 야당은 정파성에 기반해 도를 넘는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렸어요. 이럴 때일 수록 정치 개별 단위가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이고 우리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빗장 거는 세계, 국제 연대 절실
"코로나19 위기 후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각국이 고립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요. 특히 극우적인 관점에서 난민과 자유로운 세계 여행, 다국적기업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국수주의 시대를 맞이하는 겁니다." 독일 포츠담 지속가능연구원(IASS) 오르트빈 렌 교수의 경고다.
실제 각국은 자국에 전염병 등의 위기 침투를 막기 위해 영주권, 체류 비자 발급 등의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은 이미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전국 이민법원 10곳을 폐쇄하고, 비자‧영주권 인터뷰를 이달까지 취소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초강대국들은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상대방에 전가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심지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렌 교수는 "위기의 시대에는 보다 효과적인 조기 경고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들 사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저서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도 최근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에서 국수주의를 배격하고, 국제 연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라리 교수는 기고문에서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우린 세계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바이러스에 비해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이다"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인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라리 교수는 또 "코로나 바이러스 사례가 거의 없는 부유한 나라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나라들이 도와줄 것이라 믿고, 많은 환자가 발생한 나라에 귀중한 장비를 기꺼이 보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광범위한 비대면, 취약층에 타격
"코로나19 이후 명확한 변화는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비대면(untact)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배영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시대 이후 우리 사회에 도래할 '변화의 키워드'가 바로 비대면이라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그동안 정보화 사회가 진행돼 원격·재택근무가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하더라도 조직의 전통적인 업무 방식 탓에 전면 실행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경험하는 학습 기회가 생겼고, 걸림돌도 상당 부분 제거됐다"며 "노동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분산 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가 도입될 수 있다. 또 비대면은 여가와 교육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날 것이다"고 예상했다.
배 교수는 이어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면서도 "구조적인 비대면 사회가 오면 사람들은 필요한 관계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고, 나머지 관계는 정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배 교수는 비대면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도 최소화하고, 특히 취약계층 보호에 주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제일 큰 문제는 비대면을 해선 안 되는 집단, 즉 독거노인 등 소외된 취약계층입니다. 비대면이 강화되면 기존 복지체계 가동에도 지장을 줄 수 있고, 서비스도 더 약화될 우려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지켜봐야만 합니다."
■사회 양극화, 코로나19로 더 가속되나
오르트빈 렌 교수는 "코로나19 탓에 우린 경제 복지와 성과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며 "안타깝게도, 이런 손실은 사회의 가장 열악한 곳부터 닥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위기 동안 필수 서비스, 이를 테면 의료와 물류, 사회 운영 유지를 위한 필수 요소 등은 대체로 저임금 노동자들이 유지해왔다"면서 "간호사나 소방관, 집배원, 환경미화원 등이 (많은 나라에서) 취약한 하위 소득계층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영 교수는 자신의 노동 환경을 사례로 언급하면서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는 이번 학기에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 노동 조건이 특혜일 정도로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 쓰는 연구실이 있고, 출근할 때는 승용차로 이동하죠. 마스크가 필요 없어 한 번도 사러 간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콜센터 노동자들과는 딴판이죠."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무릅써야 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더 낮잡아 보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사회라는 틀 속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상호작용 속에 사회가 만들어진다.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기울어진 배 일으킬 '복원력' 키워야
오르트빈 렌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공공과 민간에서 '효율성' 보다는 '복원력(resilience)'에 대한 투자가 더 활발히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 변화로 꼽았다.
렌 교수는 "우리는 복원력을 희생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것이 매우 심대한 위험 요소임을 목격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지는 미래의 정책에 달려있다. 복원력에 투자한다면 취약한 계층이 이전보다 더욱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 교수 역시 공공의료 강화와 재난소득 시행 등 위기 시점에서 사회 복원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코로나19로 유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공공의료체계나 안전망이 우리 생각만큼 튼실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부산의 침례병원 공공병원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례 없는 전염병 위기 속에 국내 음압병상, 호흡기‧감염내과 전문 인력 등이 여전히 부족한 실태가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각 지자체는 지역 공공의료 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했지만 모든 환자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국내 공공의료 병원은 전국 병원 대비 5%에 불과하다. 더구나 몇 안 되는 공공의료 병원이 코로나19 전담으로 전환되자, 취약계층 의료 서비스에 큰 공백이 생겼다.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사무국장은 "공공의료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역할이 커져, 각 지자체는 건강 증진 사업과 별도로 공공의료만을 전담하는 컨트롤 타워를 별도로 설치하는 등 후속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