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저항하다 '혀 절단'했다고 유죄…56년 만에 부산지법 재심청구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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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키스 혀 절단사건' 피해자 최말자 씨 "정당방위"

부산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건물 전경 부산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건물 전경

성폭행을 시도하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여성이 56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한다.

4일 부산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최말자(74) 씨는 오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최 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6일 저녁 성폭행을 시도하던 당시 21살 노 모 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자른 혐의(중상해죄)로 이듬해 1월 부산지법 형사부(재판장 이근성)로부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6개월간 옥살이도 해야했다.

최 씨는 당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를 견디며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노 씨에게는 강간미수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은 채 특수주거침입 등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에서도 심각한 2차 가해가 이어졌다. 1964년 10월22일 당시 본지 보도를 보면 재판장은 최 씨에게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후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장소와 집이 불과 100m 거리고,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변 집에 들릴 수 있었다"며 "혀를 깨문 최 씨의 행위는 방위의 정도를 지나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 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내 부산여성의전화와 상담을 진행했고, 올해 재심청구를 결심했다.

4일 보도된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최 씨는 "그놈이 가해자인데 나만 구속되어서 여섯달 넘게 교도소에 있었다"며 "'나는 잘못이 없다' '정당방위라고 생각한다'고 수없이 얘기했는데, 검사는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했고, 판결문에도 검사가 말한 그대로 나와 있었다"고 밝혔다.

사건 이후 오히려 주변에서는 "결혼은 하면 간단히 끝나지 않느냐"며 노 씨와의 결혼을 권했다. 최 씨는 "집에선 '이 가시나 때려 죽인다'고 난리였다"고 회상했다.

반면 노 씨는 사건 이후 친구 등 10여 명을 데리고 최 씨의 집에 찾아와 흉기를 책상에 꽂는 등 행패를 부렸다. 결국 최 씨 아버지가 노 씨에게 돈을 주고 합의를 했다.

최 씨는 당시 검찰 역시 "(가해자와) 결혼하면 간단하지 않으냐" "못된 년. 가시나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 등 비난을 거듭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가장 억울한 건 검사실에서 강압적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다"며 "검사가 주먹질하는 시늉을 하고 욕을 하면서 '니가 고의로 그랬지?' '계획적으로 했지?' 이런 말을 계속하는데, 조사를 받는 날에는 '오늘 또 죽었다'고 생각하며 정신이 아찔했다"고 밝혔다.

최 씨와 변호인단, 부산여성의전화는 6일 재심 청구에 앞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당시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최 씨처럼 한을 품고 살아온 여성이 많을 것"이라며 "이런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고 당당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 씨가 56년 만에 재심 청구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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