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 쌩쌩 달리는데, 자전거도로 예산은 '0원'
전용도로서 전동킥보드 주행 최선이지만
부산시 인프라 확충 예산은 한 푼도 없어
킥보드 보행자 섞여 '걷기 좋은 도시' 공염불
자전거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함께 있는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이하 겸용도로)'가 압도적으로 많은 부산(busan.com 5월 29일 보도)에서는 사고 우려도 크다. 다만 인도와 차도 사이에 분리된 '자전거전용도로(이하 전용도로)'에서는 전동킥보드 속력을 시속 20km 이상 내면서 비교적 안전하게 탈 수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를 통과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오는 12월부터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하고 이용 가능 연령을 만13세 이상까지 낮춰 '개인형이동수단(PM·Personal Mobility)' 이용자도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전용도로 등 인프라 확충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쑥쑥 크는 PM 시장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전동킥보드 공유업체는 16곳으로 이중 3곳이 외국계 업체다. 업계 '빅3'로 통하는 곳은 국내 업체인 '씽씽'과 '킥고잉', 미국 회사인 '라임'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지난달 25일 펴낸 보고서를 보면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가 2019년에 견줘 급격히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동킥보드 앱(안드로이드 기준) 사용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4월에 3만 7294명이었지만, 올 4월에는 21만 4451명으로 6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중 20~30대가 전체 사용자의 63%를 차지했다.
전월대비 사용자도 급증했다. 킥고잉의 올 4월 이용자는 3월보다 79%, 씽씽은 76% 늘었다. 모바일인덱스는 이처럼 전동킥보드 앱 사용자의 증가 원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했다. 대중교통을 통한 감염 우려가 커지자 혼잡한 버스, 도시철도보다 PM을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전동킥보드의 신속·편리성을 옹호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앞서 <부산일보>가 보도했던 '전동킥보드 자전거도로서 달려라? 사실상 인도서 타라는 말' 기사에 댓글을 남긴 아이디 'yoan****' 독자는 "현재 차가 밀리는 도로 상황에서는 전동킥보드가 획기적인 교통수단인 것 같다. 이용해 보니 정말 편리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울산 사람이라고 소개한 아이디 'ente****'은 "부산의 바다에 놀러갈 때마다 교통이 불편해 '교통 지옥'을 방불케 한다"면서도 "해운대 부산동부버스터미널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너무 편하게 구석구석 다닐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존 전용도로도 사라질 판
이처럼 PM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대비해 전동킥보드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자전거도로 인프라 정비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전동킥보드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전용도로 확충은 필수다.
그럼에도 전용도로 추가 신설은커녕 오히려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전용도로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도 있다. 2009년 설치된 부산 남구 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주)한탑 1.2km 구간이다. 이 지역은 무가선 저상트램 건설이 확정돼 좁아진 차로 확보를 위해서는 전용도로를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자전거 통행도 많지 않아 철거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남구청도 지난해 2월 부산시에 공문을 보내 해당 전용도로를 철거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앞으로 전용도로 추가 신설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부산시가 2018년 수립한 '자전거 이용 활성화 계획'을 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168억여 원을 들여 자전거도로 38개 노선(72.27km)을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만, 현재까지 반영된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자전거 타기를 장려해 국비 예산도 많이 내려왔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며 "계획된 노선 중에서도 실시설계 단계까지 가야 전용도로 확정 여부를 알 수 있다. 전용도로를 지으려면 차로를 줄여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운영하는 서울시의 자전거도로 사정은 어떨까? 서울의 전용도로 길이는 부산(49.28km)보다 3배나 긴 148.7km에 이르고, 비율도 부산(11.1%)보다 4.7%포인트 높다. 서울 전체 자전거도로가 부산보다 2.4배 길지만, 전용도로는 격차가 이 보다 더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확실히 서울의 자전거도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셈이다. 반면 서울의 겸용도로 비율은 전체 자전거도로의 66.1%로 부산(88.41%)보다 낮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신설하는 자전거도로는 가급적 전용도로 형태로 지을 것이다"면서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허용이 쟁점으로 떠오른만큼 설계 기준 변경 등 세부적인 사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걷기 좋은 도시'는 언제?
부산시는 지난해 9월 광역단체 중 처음으로 '부산시민 보행권리장전'을 선포했다. 장애인을 비롯한 보행약자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130곳에 시비 110억 원을 들여 '무장애 보행길' 선도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 오는 2022년까지 시 전역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보행길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부산관광공사는 지난달부터 '2020년 걷기 좋은 부산, 미션 워킹투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사는 미션 워킹투어에 부산 각 지역의 테마 코스를 걷고 즐기는 도보 투어 관광 상품으로 지역 역사와 문화, 쇼핑, 먹거리 등을 함께 접목했다. 코스는 남구 평화로, 동구 타오르길, 수영구 짝지길, 중구 지름길, 영도구 지림길 등 5개 정규투어 코스와 특별투어 코스인 해운대 부산영화축제의 거리 등 모두 6개로 이뤄져 있다.
이처럼 부산시는 시 대표 정책 중 하나로 걷기 좋은 도시를 앞세워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전동킥보드라는 '복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현재 라임사는 남구와 수영구, 해운대 지역에서 전동킥보드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 부산관광공사가 미션 워킹투어로 지정한 남구 평화로에도 라임 전동킥보드가 심심찮게 다닌다. 결국 자전거도로 인프라를 확대하지 않는 한 보행자와 전동킥보드, 자전거가 뒤섞여 이동하게 돼 '걷기 좋은 도시'도 요원해진다.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임창식 박사는 "인프라를 짧은 시간 내 바꾸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우선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고르지 못한 노면 정리나 진입 턱을 낮추는 등 기존 자전거도로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전동킥보드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