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산폐장
부산지역 쓰레기 매립장 신설과 관련해 떠오르는 20여 년 전의 일화 하나. 기존 매립장 수용 능력이 곧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새 후보지 선정이 시급한 시기였다. 시는 실태 조사를 거쳐 몇 곳을 염두에 둔 상태였다. 당시 사정은 외부로 이를 알리거나 공청회를 열 정도는 아니었다. 용역 업체를 통해 기초 조사를 겨우 마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밖으로 샐 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담당자가 관련 회의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이면지로 쓰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이를 뒤늦게 안 해당 부서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상황을 파악하고 누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공론화 시기까지 해당 주민에게 알려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얘기는 쓰레기나 폐기물 처리장 설치가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를 실감 나게 한다. 만약에 당시 쓰레기 매립장 후보지가 미리 알려졌더라면, 주민들 반발에 공청회도 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는 주변에 혐오 시설이 들어선다는 데 찬성할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당장 보기에 흉한 데다 악취와 먼지가 나서 삶의 질 자체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주택이나 농지 같은 재산의 가치가 급락하는 건 불문가지이다.
지금 한창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부산지역 산업폐기물 매립장(산폐장)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6개월 후에 하나뿐인 매립장이 꽉 찰 예정이지만, 후속 장소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여러 가지 절차를 고려하면 당장 시작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폐장 신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벌써 폐기물처리 비용이 급상승해 업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역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이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기업 유치에도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지역에 이 시설이 안 들어서도 오염을 피하기 어렵다. 불법 매립이 성행하면서 언제 폐기물이 발밑에 몰래 묻힐지 몰라서이다. 그렇다고 반대 의견을 마냥 ‘님비 현상’으로 비판할 일도 아니다. 우격다짐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주민 의사 역시 후보지 결정 요건에 넣는 게 옳다. 그래야 피해 이상의 혜택을 고민하게 된다. 아울러 폐기물 독성을 줄이는 환경기술 발전과 법규 정비도 필수다. 사회 갈등 조정 능력은 이처럼 총체적인 역량을 요구한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