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형제들] 11번째 증언 "식물인간처럼 돼버린 박인근 원장, 제가 업고 나왔어요"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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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서면 돌아다니다 지쳐
지하도서 잠자다 형제복지원 끌려가

10년 전 목욕 일하며 박인근 원장 재회
마지막 봤을 땐 말하지도 걷지도 못해


※편집자주-1987년 봄, 부산 사상구 주례동 백양산 자락. 육중한 담장 너머로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12년 동안 공식 사망자만 513명. 이후 33년이 지나서야, 최근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부산일보>는 '살아남은 형제들-형제복지원 절규의 증언' 영상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피해자들 기억 속 진실의 조각을 맞춰보려 한다. 33인의 목소리가 모여 33년 전 '한국판 아우슈비츠'의 실체를 밝히는 한 걸음, 수만 명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길...('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간추린 이야기>

악연의 끝은 어디일까.

잊고 지냈던 '그 사람'이 정수철(54·가명) 씨 눈앞에 나타난 건 10여 년 전이다. 정 씨는 마흔의 나이에 마지막으로 출소한 뒤, '목욕관리사'로 일하며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사상온천'에서 면접을 위해 마주한 사장. 그는 다름 아닌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생계 생각하며 꾹꾹 눌렀다. "형제복지원에 있었다"고 하자 박 원장은 보증금 3000만 원을 면제해줬다. 대신 일비로 얼마씩 떼겠다고 했다. 목돈이 없었던 터라 불행 중 다행. 하지만 수십 년 만에 다시 박 원장 밑에서 일하게 된 기구한 운명은 마냥 다행이라 여길 수 없었다.

하루는 구두를 닦고 있는데 박 원장 가족들이 '벌레보듯' 불편한 눈길을 던지며 정 씨를 지나쳤다. 형제복지원 시절이나 이후나 원생들을 대하는 시선은 그대로였다.

손님의 불평으로 사상온천을 그만두게 된 정 씨. 몇 년 뒤 알바(스페어) 자리가 나 잠깐 다시 일하러 간 순간, 몰라보게 변한 박 원장을 목격했다.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왜소한 노인. 직원의 부탁으로 그를 업고 나온 게 박 원장과의 마지막이었다.

(박 원장은 치매 등 지병이 악화돼 2016년 세상을 떠났고, 사상온천은 매각돼 주인이 바뀌었다.)

정 씨와 박 원장의 악연은 40여 년 전 시작됐다.

이혼 후 집을 떠난 어머니를 찾아 서면 일대를 돌아다니다 지쳐, 지하도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잠을 깨우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차에 올랐고, 도착한 곳은 형제복지원이었다.

피부병과 눈병이 심하게 걸렸을 때, 때마침 아버지가 찾아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하루는 친구와 시비가 붙어 파출소로 끌려갔고,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목사님 가정방문으로 또 한 번 집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를 통해 한 번 더 끌려갔다.

정 씨는 1985년 군입대 통지서가 날아온 덕분에 형제복지원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었다.

높고 두터운 담장은 벗어났지만 형제복지원의 굴레는 계속됐다. 원양어선, 군대를 비롯해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강압적으로 지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형제복지원 시절이 떠올라 참을 수 없었다.

정 씨는 '세신'과 '마사지' 기술을 익혀 목욕관리사 일을 시작했고, 15년째 별 탈 없이 생활해오고 있다.

최근 정 씨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이 뚝 떨어져 월수입이 채 10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죄도 없는데 잡혀가서, 청춘을 다 보낸 게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악연은 여전히 현재의 삶을 옥죄고 있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생활하며 정 씨가 활동했던 악대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안에서 생활하며 정 씨가 활동했던 악대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더 많은 이야기>

■ 엄마 찾으러 서면 돌아다니다…

제가 영도 살 때 엄마가 이혼하고 어디 멀리 가셨는데. 엄마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지쳐가지고...

서면지하도... 그 안에서 자다가,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와가지고 나를 깨우더라고요.

반항 같은 거는 못 하지요... 양쪽을 잡고 갔으니까. 탑차에... 밖에 차가 있더라고요. 반항하고 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사정없이 두드려 맞는 사람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면 때리는 가보다. 밥 먹으라면 밥 먹고. 제식 훈련 받으라 하면 받아야 되고. 그냥 시키는 대로 거기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군대 제식 훈련을 어린 아이들한테 다 시키고 가르칩니다. 틀리면 마... 꼬라박기도 하고 굴리기도 하고.

한 3000명 들어갈 정도의 큰 식당이 있습니다. 일렬로 딱 들어가거든요. 보리밥... 오후 3시쯤 되면 식빵. 빵 있잖아요. 거기서 만들어 가지고. 콩국하고 그거 먹는 게 하루 일과였고요.

빠다(버터) 있잖아요 빠다 마가린... 거기서 만들어 가지고 하나씩 줘요. 그 빠다에 밥 말아먹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왜냐면 그게 맛있으니까요.

귀신 짱구 마귀 이런 사람들이 다 조장들이고. 구타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소대장이 기분 나쁘면 아이들 단체로 기합 때리고. 밖에 나와가지고 막 굴리기도 하고.

성인 조장들 있잖아요.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쳐요. 담배 피라고 마... 강제적으로 입에 막... 안 피우면 꼬라박아라 해갖고 마 발로 차고.

우리는 뭐 힘이 없어요. 맞으면 맞는 가보다.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그 안에서.

아동들이 주로 일했던 형제복지원 내 낚시공장.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아동들이 주로 일했던 형제복지원 내 낚시공장.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뒤에서도 때리고 앞에서도 때리고

대양낚시라고 있어요. 낚시공장이라고 있는데. 진짜 지옥입니다 말 그대로.

그 안에 들어가면 그냥 손이... 늦으면 구타가 장난 아닙니다. 뒤에서도 때리고 앞에서 때리고 정신이 없어요. 맞다가 보면 언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고. 잠깐 쉬는 게 이제 30분 쉬었다가 또 다시 낚시공장 일을 하고.

낚시 줄로... 이렇게 낚시 갖고 감아요. 외국으로 수출한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손이 늦으면 항상 뒤에서 사정없이 때리니까. 겁을 먹고 막 그냥 돌리는 거야. 찔려가지고 피 나기도 하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방에서 만들다가 꾸벅 졸잖아요. 그럼 아침에 없어요. 남의 걸 훔쳐가지고.

성인이 되니까 다른 성인 소대로 이동이 됩니다. 마다리(마대) 아시죠? 모래.

교회당이 있습니다. 그걸 지으라는 거예요. 그거 마다리 지고 뛰어다녔다니까요. 걷는 게 아니고 뛰어다녔어요.

교회당 다 짓고 끝날 무렵에 난 고시반에 갔습니다. 10소대.

낮에는 악대반... 아코디언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밖에 사회에서 하는 행사도 나왔거든요. 뭐 체육대회 가서 같이 연주도 해주고. 주말에 교회당 가서 찬송가도 같이 하고.

밤에는 이제 야간에 고시반 교실로 가요. 사회의 선생들이 와가지고 봉사활동을 해요. 부산대학교 학생인 걸로 알고 있는데. 한문 선생, 영어 선생, 이렇게 돌아가면서...

야간 중학교(고시반)에서 공부하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야간 중학교(고시반)에서 공부하는 원생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악대반이 마을 주변을 돌며 공연하는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악대반이 마을 주변을 돌며 공연하는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살 파지는 '피부병', 고름 나오는 '눈병'

온몸에 막 피부병이 번지는데. 막 이가 바글바글... 옷에 바글바글 하고. 그래가 막 긁다 보니까 살이 파지고.

피부병이 끝나고 나니까 이번엔 눈병이 걸려가지고 눈을 못 뜨더라고요. 눈에 고름이 막 쌓이고.

그때 한 번 내가 밖에 '귀가'로 나간 적이 있어요. 부모님이 찾아 와가지고.

영도 집에 갔다가 또 사고로 파출소에 가가지고. 다시 형제복지원에 들어갔는데. 85년도까지 있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군대 통지서 날아와가지고.

(탈출을 생각하셨다거나...?)

생각은 많이 했지요. 밤에... 벽을 뚫고 나가는...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문짝도 막 이렇게 나사 빼가지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갑자기 도망가면... 나머지 사람은 그냥 죄 없이. 야구방망이로 빠따 맞고 그런다니까요. 진짜 그때는 어이가 없어가지고.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콩국 배식을 받고 있는 아이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형제복지원 식당에서 콩국 배식을 받고 있는 아이들.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군대 대신 원양어선 탔지만…

군대를 안 가고 원양어선을 탔죠. 왜냐면 사회에 적응이 안 되니까. 사회 사람들하고 우리하고 대화를 하면 무슨 말인 줄 우리는 못 알아들어요.

아마 삼송인가 그럴 거예요. 갑판장 소속으로 갔는데. 본사가 베네수엘라... 거기에 있고.

일하다 보면 잠을 잘 수도 있잖아요. 꾸벅 꾸벅. 잔다고 때리고 빨리 안 한다고 때리고.

'무단 하선' 해버렸잖아요... 6개월 만에. 대사관 연결해가지고 비행기로 왔는데. 밀항법으로... 그래 집행유예 받고 나왔지요.

다시 또 군대를 갔는데. 이유 없이 뭐라 하면... 때리면 나는 마 군대를 안 가버리니까. 탈영해가지고 헌병대에 끌려갔지요. 양정에. 구치소로 넘어가 가지고 집행유예까지 같이 살았지요.

또 사고 쳐가지고 징역 10년을 살았... 그래 마흔 살 때 나왔죠. 서른 살 때 들어가서...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목욕관리사' 직업이 기술이 있으니까... 사고도 없고. 이때까지 쭈욱 살아왔어요.

박인근 원장 일가가 운영했던 사상온천의 당시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박인근 원장 일가가 운영했던 사상온천의 당시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 '목욕 일' 하다 마주친 박인근

그 사상온천 아시지요? 그게 자택입니다. 박인근 원장이란 사람... 희한하게 또 운명이란 게 있잖습니까. 사람 인연이란 게... 내가 거기(사상온천)서 일하게 됐는데.

박인근 원장이 내가 형제원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저만 보증금 안 걸고 해라 이거예요. 그러니까 일비로 빼는 거예요. 일비로.

하루는 구두를 닦고 있는데 형제복지원 식구들이... 박인근 집안(식구)들이 지나가더라고요. 사람을 보면 좀 인사를 하든가. 벌레 보듯이 이상하게 눈빛을 주니까. 기분 나쁜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이 내가 일을 못한다고 그러더라며 그만두라 하더라고요.

몇 년 있다가 그 건물이 바뀌었어요. 내가 그때 알바 하러 갔거든요 알바... '스페어'로.

일을 하고 나오는데 "이분을 좀 들고... 업고 나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보니까 박인근이더라고.

'식물인간'처럼 완전 말도 못하고... 걷지를 못 했어요. 그래 내가 업고 나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처음에 박인근 원장을 딱 봤을 때...)

와 진짜 그런 (분노) 감정이 왜 안 들었겠어요.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참고 있었죠.

손님들 중에도 (형제복지원 출신들이) 와가지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박인근하고. 지(박인근)는 뭐 파출소... 퍼뜩하면 파출소에 신고를 하니까.

요즘은 이제 코로나 때문에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수입. 밥만 먹고 살 정도만 돼요. 지금은 신용불량자 돼가지고...

형제복지원... 원양어선... 학교... 갔다오니 사회생활을 너무 못 했어요. 우리가 왜 거기서 내가... 이유 없이 잡혀 와가지고 어린 나이에...

자기 마음대로 죄 없는 사람, 서민들을 잡아가는 거는 그 자체가 불법 아닙니까. 청춘을 다 보낸 게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정당한 생활을 위해, 우리 서민들을 위해 좀... 지원해주시고. 솔직히 진짜 어렵긴 어렵습니다 지금 생활이. 그냥 밥만 먹고 살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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